“아니, 서울에 왜 백제박물관이 있지?” 며칠 전 어느 지인이 서울시 송파구에 자리잡은 한성백제박물관을 지나치며 한 말이다. 분명히 대학원까지 나온 지식인이고 고등학교 때 공부도 꽤나 잘한 사람인에 이런 생뚱맞은 말을 하는 것이다. “백제 수도의 대부분 시기가 서울에 있었으니 당연하지요” 기자의 대답에 그 지인은 소스라쳐 놀란다. 심지어 전라도가 백제의 본거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전라도가 백제의 수도로 행세한 것은 삼국시대에는 한 번도 없었고 후백제 견훤이 완산주, 지금의 전주를 수도로 삼았을 뿐이라는 말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의아해 한다. 실제로 백제는 서기전 18년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를 거점으로 성장하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의해 문주왕이 웅진(지금의 세종시)으로 천도했고 다시 성왕 때인 538년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겨 660년까지 지냈다. 다시 말해 백제는 678년의 역사 중 무려 493년을 서울을 수도로 삼은 나라고 63년간 세종시(이전의 공주시)에서, 다시 185년간 부여를 중심으로 성장했던 나라다. 무려 73% 가까운 역사를 서울을 중심으로 살았는데 국사를 배운 대부분 국민들은 은연중 백제는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나라로 착각하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경상도와 수도권 혹은 경상도와 충청도가 아웅다웅 다투어야 하는데 정작 수도권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충청도는 캐스팅 보트를 쥔 채 태평이다. 이유는 있다. 삼국시대를 그려놓은 대부분의 지도가 한강 이남을 기준으로 동쪽은 신라 서쪽은 백제라는 경계선을 쳐놓았고 60년대 이후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과 그에 맞선 정치세력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교묘히 그어 놓은 심리적 대결구도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가 통일한 이후 전국을 통틀어 우리나라 주류는 신라출신이 대세가 되었고 이런 영향은 개화기 우리나라 성씨가 대부분 경주 중심의 성씨로 대거 등록되는 것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결국 지리적으로 전라도와 경상도가 마주보고 있지만 서류상으로는 대부분 국민이 경주 김씨, 경주 최씨, 경주 정씨 등 신라의 후예라는 말이다. 서울에 당연히 있어야 할 한성백제박물관을 보며 머릿속에 들어있는 서로간의 부정적인 선입견을 씻어내고 전라도 경상도가 사이좋게 지내는 동력으로 삼으면 어떨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