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뚱맞은 일 겪을 때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어색해서 얼떨떨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생뚱맞은 데도 불구하고 그 속에 머리를 치는 무언가가 있다면 큰 재미가 된다. 브런치 카페 ‘로만티시’를 찾아가는 길은 생뚱맞았다. 네이게이션에 소티남길 7번지를 치고 갔더니 거짓말 좀 보태서 이상한 논두렁길로 차를 안내한다. 이게 맞나 긴가민가하는데 분명히 네비는 맞다고 알려준다. 그러다 논 가운데 우뚝 솟은 2층 서양식 건물이 나타나니 이번에는 더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런 들판 가운데···’ 차를 세우고 잠깐 건물을 둘러보니 오기 전에 잠시 사진으로 찾아보던 그 건물이 맞기는 맞다. 정면 입구로 나무로 테라스를 만들어 놓은 건물은 회색이라기보다 콘크리트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칠하지 않은 건물인데 건물 가운데 능소화가 소담스럽게 피어올랐고 건물 밖울타리 안쪽에는 또 다시 생뚱맞게 항아리들이 잔뜩 줄지어 서 있다. 보통은 오래된 한옥을 베이스로 서있을 법한 항아리들이 서양식 콘크리트 건물 밖에 모여 있는 모습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미지다. -박미희 작가의 만다라와 음표 형상화 한 감각적 그림 돋보인 실내 인테리어 현관을 지나 약간은 좁은 듯한 통로를 따라 실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통로부터 무언가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약간은 오래 된 듯한 피아노가 길손을 맞아주고 통로 양쪽으로는 도자기며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그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통로를 빠져 나오자 갤러리에 들어온 것처럼 실내가 화려하고 개성 강한 색감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들어가면서 왼쪽 벽에는 만다라 그림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반복되는 생뚱맞음의 뒤가 이처럼 놀랍게 전환되고 보니 무언가 확실히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그림의 실체는 다름 아닌 ‘만다라 그림’과 음표를 상징화한 아름다운 색감의 미술 작품들로 자신의 독창성을 확립한 박미희 작가의 작품들이다. “만다라 작품은 미술치유를 계획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고 음표를 상징화 한 작품 역시 음악을 담은 그림을 그림으로써 마음을 정화하는 효과를 주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그림입니다” 박미희 작가가 심혈을 기울이는 만다라는 원(圓)을 바탕으로 깨달음을 얻는 정신수양의 상징적 표현이다. 음표를 암시한 화사한 색감의 그림들은 박미희 작가의 또 다른 직업과도 관련있다. 박미희 작가는 유명한 음반사인 대한음악사에서 현직 팀장으로 근무 중인 음악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드럼을 익혀 카페 한 쪽에는 드럼 장미가 완비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박미희 작가의 설명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그림에서 뿜어 나오는 밝고 따스한 기운이 카페에 가득 넘친다. 굳이 브런치 카페일 뿐 갤러리 카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박미희 작가의 선긋기에도 불구하고 어떤 훌륭한 캘러리 카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런 박미희 작가에게 남편인 이동우 씨는 자신의 역할은 ‘다만 동의할 뿐’이라며 웃는다. ‘아내 덕분에 실내 인테리어를 돈 안들이고 할 수 있었다’는 말에는 익살 속에 은근한 자랑을 숨겼다. 이동우씨는 동아텔레비전 제작PD 출신으로 경주문화재단에서 다양한 예술활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지금은 ‘쉬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이지씨씨의 대표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문화예술방면에 두루 조예가 깊은 이 부부가 들판 가운데 브런치 카페를 만든 것은 조금은 우발적이다. “원래는 미술치유센터와 독서치유센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커피정도만 내려 마실 수 있도록 꾸몄었는데 오고가는 분들마다 한 말씀씩 조언하셔서 결국 브런치 카페로까지 왔어요” 아무리 예술방면에 탁월한 재능들이 있다고 해도 브런치 카페는 결국 음식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예술은 음식의 주변을 장식하는 도구는 될 수 있어도 결코 음식의 중심은 절대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요한 벽을 박미희 작가, 아니 박미희 셰프는 간단히 뛰어넘는다. 그럴 만한 것이 박미희 작가는 정식으로 한식과 양식부문 조리사 자격증을 갖춘 전문 요리사다. 치유센터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 대접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빼어난 요리솜씨가 드러났고 그것을 본 지인들이 브런치 카페를 강력히 추천했던 것. -직접 키운 텃밭의 재료, 직접 담은 전통 된장의 맛, 재료들이 살아서 맛을 내는 건강한 밥상 그 추천을 고려해 브런치 카페를 계획하면서부터 부부는 텃밭을 더 신경 써서 만들고 전통 된장 만들기에 남달리 매달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텃밭에는 유기농법으로 키운 호박, 고추, 상추, 들깨, 토마토 등의 채소들이 자라고 있어 어지간한 요리재료들은 모두 자체생산의 저력을 자랑한다. 된장은 건물 들어오기 전에 본 항아리들이 그 실체다. 이 카페의 또 다른 자랑인 장아찌들은 이 귀한 된장이 생산하는 또 다른 부산물이다. “제가 야채재료 쓰는 것에 까다롭고 조미료 쓰는 것에는 더 유달리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요. 제가 먹는 것과 똑 같이 저희 카페를 찾는 분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저희 카페의 기본이어야 한다고 믿었지요!” 박미희 셰프는 어찌보면 그림 그리듯 자신만의 요리를 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침 취재에는 이 카페를 적극 추천한 미식가 변성희 교수(한국관광정보정책연구원원장)가 동행했다. 변성희 교수는 로만티시의 음식에 대해 ‘재료의 맛이 각각 살아 있는 음식’이라 평가했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 들쩍지근한 음식들이나 이른바 ‘단짠’ 음식들은 재료의 맛이 헝클어져 온통 범벅이 되어 진정한 재료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로만티시의 음식들은 각각의 재료들이 지닌 맛과 건강성이 그대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시중의 잡탕식 맛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오히려 낯설 수도 있어요. 이런 맛을 자주 보지 못하니까요!” 변성희 교수는 경주가 취해야 할 새로운 문화창조의 면에도 로만티시 같은 새로운 개념의 카페들이 또 다른 관광성의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만티시에는 마침 보문관광단지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키덜트뮤지엄의 김동일 관장도 박물관 관계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와 있었다. 로만티시의 단골고객임을 자부하는 김동일 관장은 이곳에서 밥 먹으면 며칠 동안 속이 편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한쪽에서는 서울에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한다는 박모 씨가 젊은 취향의 입맛에도 이처럼 신박한 맛은 드물다며 박미희 셰프가 내 준 호박전에 빠져 황홀감을 드러냈다. 이쯤해서 이 카페의 바깥 주인장 이동우 씨는 로만티시가 6차 산업의 총아라며 너스레다. 1차 농업생산에 2차 음식조리에 3차 서비스업까지 겹쳐 ‘1+2+3=6’ 6차 산업이라는 것이다. 좌중이 폭소에 휩싸였다. 그 떠들썩한 웃음 때문일까? 앞에서 나열한 여러 가지 보다 더 큰 또 다른 매력이 이 카페에는 숨어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이 부부의 행복이다. 이 부부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고 사람 속에서 행복함을 얻는다고 소개한다. 그게 억지로 살펴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얼굴에 훤히 드러나 보인다. 행복한 사람이 만드는 음식은 행복이 담길 수밖에 없다. 그 행복이 좋은 재료를 품은 채 맛있는 요리로 거듭나고 있고 특별한 기운을 품은 만다라와 음표를 안은 아름다운 그림들이 기운을 북돋워준다. 잔잔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들은 좋은 기운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들이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데 바깥 주인장 이동우 씨가 텃밭에서 호박 두 개를 따 기자에게 건네준다. 탐스럽게 생긴 호박이 묵직하다. 방금 카페에서 대접받은 호박부침을 집에서도 똑 같이 해먹어 보라는 권유다. 이동우 씨 뒤로 된장 항아리들이 하늘을 향해 유리천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잘 깔린 바닥에는 숨 쉬는 항아리 수십 개가 펼쳐져 있고 그 속에는 보기에도 건강한 된장들이 검게 익어가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 된장 항아리들에 목걸이가 하나씩 걸려있다. 이들 부부가 직접 담은 건강한 전통된장을 항아리 째 찜한 고객들의 이름표들이다. 또 한 가지, 마침 이 장독대 앞 공터에 새로운 공사가 시작되었다. 작은 연못을 파고 금붕어와 수초를 심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이다. 조만간 이 생뚱맞은 공간에 또 하나의 생뚱맞은, 그래서 더 재미있는 공간이 생길 예정이다. 로만티시‘로맨틱’의 독일어 표현인 ‘로만티시’에서 건강한 맛과 함께 재미있는 일상이 시작될 듯하다. -예약 070-7311-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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