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의 인기 장소를 꼽으라면 야경이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 즉 안압지(雁鴨池)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래전 매월당 김시습은 월성 안 연못을 보고 안하지(安夏池)라 불렀다. 『삼국사기』를 보면, “문무왕 14년 2월, 대궐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으며, 진기한 새와 짐승들을 길렀다(二月 宮內穿池造山 種花草 養珍禽奇獸)”라 기록하는데, 이 못이 지금의 안압지를 말하는지 정확하지는 않고, ‘안압지’의 용어 역시 비로소 『동국여지승람』 등에 언급되니, 그 사실 여부는 역사적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안압지는 “천주사(天柱寺) 북쪽에 있다. 30대 문무왕이 궁궐 안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데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을 본떴으며,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들을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臨海殿) 터가 있는데, 주춧돌과 섬돌이 아직도 밭이랑 사이에 남아 있다” 그리고 1778년에 제작된 『동사강목(東史綱目)』 역시 안압지의 건립 시기를 문무왕 14년(674)으로 기록한다. 안압지는 삼신산(三神山)과 무산 12봉 조성을 통해 도교·신선사상과 연관되고, 동궁의 승방전(僧房典) 존재와 최근 발굴에서 출토된 수많은 금동판불(金銅板佛)과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금동원각불상(金銅圓刻佛象) 등을 통해 불교가 성행했던 신라를 상상할 수 있다. 김근행(金謹行,1712~1782)·유한준(兪漢雋,1732~1811)·공학원(孔學源,1869~1939)·정기연(鄭璣淵,1877~1952)·류기춘(柳基春,1884~1960) 등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경주를 유람하며 안압지를 감상하고 시문(詩文)을 지어 감흥을 읊조렸다. 이들은 주로 적막한 안압지의 부평초와 연꽃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는 기러기를 보며 망국의 적막함을 표현하였고, 아직도 그대로인 무산 12봉과 성대했던 임해전 등을 통해 지난 역사의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1732~1809)의 『청성잡기』「성언(醒言)」에는 동도(東都)의 일곱 가지 괴이한 일 가운데 “안압지의 부초(浮草)는 연못의 수위에 따라 오르내리면서 항상 가라앉지 않는다(雁鴨池浮草 與池水高下 常自不沈)”며 당시 부평초 등 못의 다양한 수생식물이 존재했음을 언급하였다. 『정조실록』 경자년(1780) 1월 26일 기록에, “안압지에 흙이 떠 있는데 넓이가 너럭바위만 하고, 그 위에 덩굴풀이 있는데 바람을 따라 왔다갔다 합니다(雁鴨池浮土 廣如盤石 上有蔓草 隨風往來).”라며, 물에 뜬 너른 땅엔 온갖 풀이 뒤엉켜 자라는 기이함을 언급하였다. 퇴우당(退憂堂) 김수흥(金壽興,1626~1690)의 「남정록(南征錄)」에 “안압지는 월성의 북쪽, 읍성의 동쪽에 있으니, 문무왕이 창건하였다.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데 무산 12봉우리를 형상하였다. 지금은 못의 물이 다 말랐다. 구릉 가운데 조금 높은 몇몇 곳은 아마도 무산의 모양일 것이다. 무너진 초석과 깨진 기왓장이 곳곳에 쌓여있어 이곳이 임해전 유허지임을 알만하다(雁鴨池在月城之北府城之東 卽文武王所創 築石爲山 象巫山十二峯者也 而今則池水盡涸 丘陵培塿者有若干處 此或是象巫山者矣 敗礎殘瓦 處處堆積 可知其臨海殿之遺墟也)”며 1660년 당시 물이 다 마른 안압지와 연못 바닥에 도드라진 무산 12봉과 그 옆 임해전의 자취 등을 언급하였다.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의 『동도잡록』에 “월성에 안압지가 있다. 못 가에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데 무산 12봉을 형상하였다. 이름난 꽃을 심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못 안에는 많은 바다 물고기가 헤엄치는데, 살아있는 전복을 따기도 하였다(月城有鴈鴨池 池上築石爲山 象巫山十二峰 種名花 養珍禽 池中多縱海魚 以至摘取生鰒)”라며, 연못 안에 바다 물고기가 많고, 심지어 전복을 채취한 사실 등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연못에 전복과 바다 물고기라니? 정말 기이한 말로 들린다. 고환당(古歡堂) 강위(姜瑋,1820~1884)는 동경을 지나며 안압지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十二峯低玉殿荒(십이봉저옥전황) 무산 12봉 아래 왕궁은 황폐하였지만碧池依舊雁聲長(벽지의구안성장) 푸른 못의 기러기 소리는 변함이 없네莫尋天柱燒香處(막심천주소향처) 천주사(天桂寺) 향 피우는 곳을 찾지 못하고野草痕深內佛堂(야초흔심내불당) 들풀에 내불당의 흔적만 깊어가네『동경잡기』에 “21대 소지왕(炤智王)이 거문고 갑(匣)을 활로 쏘아 넘어뜨렸더니, 그 속에 있던 자가 바로 이 절(천주사)의 중이었다.”며 신라의 오래된 사찰의 존재를 언급하였고, 또 천주사·내불당·제석원(帝釋院) 등 실체를 규명할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안압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고전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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