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와 마주해 서 있는 분황사 천년 묵은 옛터에 풀은 여전히 새롭네’ 조선시대 문신 서거정(1420-1488)이 쇠락한 경주 분황사를 보며 남긴 말이다. 지금도 신라 사찰은 대부분 건물터만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지만, 여전히 푸르른 자연과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서는 오는 10월 3일까지 사진전 ‘천년 묵은 옛터에 풀은 여전히 새롭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인 故한석홍, 안장헌, 오세윤 씨의 경주지역 불교 유적을 담은 57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신라 왕경에 세워진 사찰’‘경주 남산’‘석굴암’ 등 총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신라 왕경에 세워진 사찰의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신라는 6세기부터 황룡사, 분황사와 같은 대규모 사찰이 왕경 중심부에 조성됐고, 676년 통일 이후에는 낭산 주변으로 사천왕사, 황복사, 동해안 쪽으로 감은사, 불국사 등이 건립됐다. ‘절들은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은 기러기 떼처럼 줄지어 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당시 신라 왕경에는 수많은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지금은 사찰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주춧돌, 탑, 또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는 옛 절터는 전시된 사진이 보여주듯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2부 주제인 ‘경주 남산’에는 여러 계곡에 걸쳐 100여구의 불상과 수십 기의 탑이 남아 있다. 전시된 사진은 천 년 전 신라사람들이 자연 속에 구현한 불교적 이상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햇빛에 마애불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작가의 오랜 기다림을 함께 느껴보는 것도 또 하나의 감상법이다. 3부는 신라의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석굴암’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석굴암 건축과 조각의 탁월한 조형미가 흑백 사진으로 한층 웅장하고 무게 있게 전달된다.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묘사된 개별 조각은 각각 부처, 보살, 사천왕상, 승려를 직접 대면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故한석홍(1940~2015) 작가는 제주 서귀포 출생이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전통미술의 세계’(국립중앙박물관 초대전, 1988), 그룹전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국립진주박물관, 2001) 등이 있으며, 사진집으로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공저, 열화당, 2001), ‘석굴암, 그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2020)이 대표적이다. 이번 사진전에 출품된 한석홍 기증 석굴암 사진의 원본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제공된 것이다. 안장헌(1947~ ) 작가는 충남 당진 출생이다.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서라벌 빛 그리고 향기’(서라벌문화회관, 1996), 그룹전 ‘Image of Korean Cultural Heritage’(유네스코 세가르홀, 1996), ‘아름다운 우리 문화재’(국립진주박물관, 2001) 등 다수가 있으며, 대표 사진집으로는 ‘영겁의 미소’(불광출판사, 1993), ‘서원’(공저, 열화당, 2002), ‘신라의 마음 경주 남산’(공저, 한길아트, 2002) 등이 있다. 오세윤(1963~ ) 작가는 경북 김천 출생이다. 대표 전시로는 개인전 ‘신라를 찾아서’(류가헌, 2013)가 있으며, ‘경주 남산’(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0), ‘황남대총’(국립중앙박물관, 2010), ‘경주 남산의 불적-어제와 오늘’(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9) 등 다수 도록 촬영을 담당했다. 국립경주박물관 측은 “신라미술관 개편에 앞서 신라불교미술에 보다 쉽게 다가갈 기회를 마련하고자 기획했다”면서 “이번 특별전이 경주 시민과 경주를 찾는 이들에게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층 가깝게 느낄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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