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좀 보려 해도 광고 때문에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유튜브(Youtube) 이야기다. 뭔가 중요한 대목이 시작되나 싶으면 어김없이 광고가 그 맥을 끊어놓는다. 그리고는 유료 회원이 되면 광고로 끊김 없는 온전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또 다른 광고(!)가 나온다. 아, 공짜로 영상을 보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을 줄이야.
문제는, 공짜가 사실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말에 ‘주거니 받거니’라는 게 있다. 말이나 물건 따위를 서로 주고받을 때 쓰는 말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다. 먼저 뭔가를 내놓아야만 원하는 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영상 한 편 보는 데는 몇 분 안 걸리지만 제작자 입장에서 영상 한 편 만들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기획에서부터 시나리오, 촬영, 편집, CG 작업에 믹싱까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인 콘텐츠를 공짜로 본다는 건 사실 공평하지 않다.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업체인 넥플릭스(Netflix) 사(社)의 다큐멘터리 〈Social Dilemma〉에서는 온라인 생태계를 이렇게 정리한다. “인터넷에 공짜처럼 보이는 서비스가 많이 있는데 사실은 공짜가 아니다. 광고주가 대신 돈을 대는 구조다. 왜 광고주가 그런 회사들에게 돈을 주냐고? 우리에게 광고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즉 소비자는 공짜 영상을 볼 수 있어 좋고, 광고주는 좋아요! 버튼을 많이 누른 영상에 광고를 실어 좋고, 관심을 끄는 영상을 만든 제작자는 광고주로부터 두둑이 챙길 수 있어 좋다는 말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共生) 관계 같지만 씁쓸한 건, 결국 우리가 상품이란 사실이다. 공짜 영상을 보는 대가로 콘텐츠 제작자는 우리의 관심을 광고주에게 파는 셈이다. 여기저기 구경 다니며 좋아요! 버튼을 눌렀을 뿐인데 온라인 회사는 이걸 잘 기억해 두었다가 내가 접속만 하면 나를 유혹한다, 추천 영상이라는 방식으로. 아니 유튜브에 잡아놓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어? 이거 내가 찾던 영상인데, 오... 재밌네” 손가락 몇 번 까딱거리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누구나 흔히 하는 경험이고, 누구도 이런 식으로 IT기업이 우릴 이용해 왔다는 걸 예상 못했을 거다. 우리를 온라인에 오래 붙잡아두면 둘수록 기업들은 환호한다. 이래도 중독 안 될래? 하며 달려드는 온라인 기업에 우리는 중독된 상품일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소위 먹방은 점점 자극적이고 정치 유튜버들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치우친다. 이 모든 게 우리의 관심을 잡아두기 위함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를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 명명했다. 하버드 경영대학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온라인에서 수집한 개인 정보를 이용하여 수입을 창출하는 자본주의를 말한다. 페이스북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로, 구글은 검색과 e메일로 유저를 잡아두는 식이다. 그래야 개인 경험을 더욱 상품화할 수 있고 그 결과 더 많은 수익이 발생할 테니까.
식당 같은 데서 아이들이 소란스럽다고 얼른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는 모습을 본다. 부산스럽던 아이들은 이내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흘러나오는 노래와 율동을 곧잘 따라 하는 걸 확인하고는 엄마들은 하던 이야기를 이어간다. 날씨 좋은 어느 주말 오후의 모습처럼 보인다면 정말이지 큰일 날 일이다. 무슨 말이냐고?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스타크래프트(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가 서비스를 개시한 후로 전 세계 게이머가 이 게임을 즐긴 시간을 다 더해봤더니 무려 500억 시간 이상이더란다. 자그마치 593만 년 동안을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게임만 한 셈이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할퀸 작년으로부터 593만 년 전이라면 원숭이에 가깝던 인류의 시조(始祖)가 겨우 서서 걷기 시작할 무렵이란다. 인류의 진화 과정과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한 시간이 얼추 비슷하다는 것이 놀랍고도 무섭지 않은가? 언제 들어왔는지 옆에 널브러져 있던 아들 녀석이 키득거리길래 뭐 하나 봤더니 틱톡으로 웃기는 영상을 보고 있다. 가공(可恐)할 만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