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기르기
안희연
네가 아는 가장 연약하고 보드라운 것을 생각해봐​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마리작은 양이었다 ​너는 그것을 잘 돌봐줄 것을 당부했다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그날 꿈속에서 너를 본 이후로나는 양과 함께 살아간다 ​목이 마르거나 춥진 않을지간밤 늑대의 습격을 받은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도 잔뜩 뿔이나 있지도 않은 양 따위, 중얼거린다​턱 끝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탈출하던 밤너를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긴 외출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거나양말 한짝이 감쪽같이 없어졌을 때에도​녀석의 목덜미를 끌어다놓고장난하지 말라고 또박또박 혼내는 스스로에게 놀란다​내가 만진 것은 무엇이었을까​누군가는 물고기를 기르고누군가는 북극곰을 기르고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소리 없이 우는 사람 곁에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세는 것’과 ‘기르는 것’
한밤 또 하나의 자아가 속삭인다. “네가 아는 가장 연약하고 보드라운 것을 생각해봐” 잠이 오지 않아 양을 세어 본 사람은 누구나 이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양을 “잘 돌봐”주고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니? 이제부터 양은 단순히 잠이 들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꿈속에서 그 목소리를 들은 후 화자는 점점 그 양에게 정이 들어 “목이 마르거나 춥지 않은지/간밤 늑대의 습격을 받은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나의 실감은 알량한 잔뜩 뿔이 난 현실의 습격도 받는다. “있지도 않은 양 따위, 중얼거린다”
그러는 사이 점점 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피붙이가 되어 간다. 무의식마저도 그에게 점거된 채. “턱끝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구했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놓치거나, “긴 외출에서 돌아왔는데 양말 한쪽이 감쪽같이 없어졌을 때에도”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장난하지 말라고 혼내”기까지 할 정도다.
그렇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소리 없이 우는 사람 곁에/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일까? 그건 단순히 상상의 유희에 불과한 게 아니다.
오직 잠을 자기위해 ‘양’을 수단으로 사용했던 화자는 그 양도 밤이 되면 무섭고, 눈이 오면 추울 거라는 생각을 하고 이러한 부분을 ‘양 세기’가 아닌 ‘양 기르기’라 명명한다. 수단으로 사용된 그 동물도 하나의 소중한 존재인데, 아끼고 소중히 기르자는 말이 생명을 불러 일으킨다. 내 주변의 꽃들, 짐승들, 손때 묻은 문방구 하나도 ‘세는 것’이 아니라 ‘길러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하다보면 그들도 내 피붙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