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라의 양지스님이나 불상을 조작하던 장인들이 그리스나 로마에서 활동했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화강암을 쪼던 신라의 장인들과 대리석을 파내던 그리스·로마의 조각가들이 똑 같은 숙제를 만난다면 누가 더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 지난 4월 26일부터 8월 31일까지 조선시대 명찰인 남양주시 봉선사의 넓은 정원에는 이런 의문을 해소해줄 만한 전시회가 열려 관심을 모은다. 경주 출신 조각가 오채현 작가가 봉선사 초대전시회 ‘해피(Happy)붓다, 해피타이거’전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봉선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넓게 펼쳐진 정원이 나오고 정원을 따라 연꽃 밭이 펼쳐져 있다. 이 정원과 연꽃 밭을 중심으로 오채현 작가의 조각들이 마치 그 자리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편하고 친숙하게 전시되어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단순히 조각상들을 배열해 놓은 것이 아니고 봉선사 정원과 불자들의 동선을 세심히 관찰하고 배치한 작품들임을 알 수 있다. 대형 트럭 10대 분량의 엄청난 조각들이 봉선사를 더 웅장하게 장엄했다. 그런데 작품들에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다. 부처님도 웃고 계시고 타이거도 웃고 있고 산신이나 보살님도 모두 웃고 계시기 때문이다. 전시회 이름처럼 ‘해피’한 기분이 잠깐 사이에 충만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불자들이나 국민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 조각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오채현 작가는 ‘해피’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연 것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경주를 중심으로 한 부처님의 모습이나 민화에 나타난 범들이 다소 어리숙해 보이지만 밝고 친근한 것에서 모티브를 찾았다고 밝힌다. 특히 부처님의 모습들은 마치 경주 남산의 삼불사 삼체석불이나 칠불암 혹은 굴불사지 사방불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완연하다. -부처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원래 돌 속에 계신 부처님을 켜켜이 묵은 진흙을 털어내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던 부처님들이 제 마음 속에 녹아 있으니 당연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것을 부정할 생각이 없음은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모습을 최대한 구현하고 싶습니다” 오 작가는 이 때문에 기술적인 고민이나 공부보다는 신라의 장인들이 남산에서 돌을 쫄 때 느꼈음직한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어 부단히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그 장소에서 그 느낌을 체득하기 위해 힘써왔다. “경주 남산의 부처님을 마주하면 신라인들의 마음을 선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원래 그 자리, 원래 그 바위에 계시던 부처님을 오래 묵은 진흙을 털어 드러내듯 작업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심정으로 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역시 ‘돌 속에 원래 존재하는 작품을 꺼내는 작업’이라 단정한다. 원래 있던 돌에서 작품을 꺼냈으니 모태가 된 돌을 최대한 원형대로 살려둔다는 선생의 자연친화적 관점이 작품 전체에 온전히 구현돼 있다. 특히 오 작가가 작업하는 돌은 경주 남산에서 나온 순수 경주 화강암이라 돌 자체에서부터 더 각별하고 정이 간다. 오 작가의 작업실 주변에는 작게는 50~60cm 이상의 돌부터 크게는 4~5m 되는 바위 급 돌까지 수백 개가 쌓여있다. 이렇게 경주 화강암이 많은 것은 20여년 전 남산주변에서 도로 공사를 벌일 때 나온 돌을 집중해서 사 모은 덕분이다. 조각의 바탕이 되는 돌에서부터 깊은 공을 들이니 그의 조각이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오 작가의 조각은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지 모르게 마무리가 덜 된 느낌이다. 부처님 얼굴이 자상하고 상세하게 묘사됐다면 얼굴에서 멀어질수록 조각에 신경을 좀 덜 쓴 듯하고 가사나 장삼 자락에 이르면 대충 선만 살린 느낌이다. 부처님을 둘러싼 광배는 숫제 거친 자연석 그대로 방치한 듯하다. 탑의 경우 탑신을 세련되게 표현하고 나서 기단부의 신장들은 투박하게 조각해 멀리서 보면 세련된 조각들이지만 가까이 갈수록 형상의 실루엣만 살렸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오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탁월함이다. 마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듯 멀리서 감상했을 때 더 완전해 보이도록 배려한 것이다. 특히 해피타이거에 등장하는 범들은 100m 이상 떨어져서 보아도 눈코입이 완벽하게 보여 특유의 밝고 활기찬 기운을 흠씬 느끼게 된다. 신라 조각의 장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전통적이면서도 새로운 시도다. “음악에 강중약이 있듯 조각에도 강중약이 있습니다. 부처님 얼굴이 9~10이라면 손발은 4~5정도고 옷의 주름이나 부처님 주변은 1~2정도로 묘사해 놓았지요.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음으로 보다 표현하려는 의도를 강조할 수 있지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오 작가는 경북대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을 마친 후 이탈리아로 유학 까라라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했다. 까라라국립미술아카데미는 이탈리에서 가장 질 좋은 대리석이 생산되는 곳을 대표하는 학교로 세계의 미술학도들이 집중해서 몰려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오 작가는 5년 동안 서양조각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했다. 이를테면 신라의 장인이 로마 조각의 심장부로 들어간 셈이다. 당연히 남다른 감회가 서릴 수밖에 없다. “경주 화강암은 입자가 굵고 매우 강질의 돌입니다. 때문에 작업하기가 매우 까다롭지요. 자칫 정을 잘 못 치면 전혀 엉뚱한 곳이 튕겨져 나가버리기 때문에 작업하기 어려운 재질입니다. 이에 반해 대리석은 입자가 작고 부드러운 재질이라 조각가들에게는 최고의 재료이지요. 이런 좋은 재료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 같은 불세출의 대가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 작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문득 다비드 상에 얽힌 일화가 떠오른다. 미켈란젤로의 후원자이자 피렌체 정치의 수장이었던 소델리니가 다비드 상을 보고 코가 지나치게 높으니 좀 깎아내라고 지시한다. 자존심 강한 미켈란젤로가 조각도를 가지고 올라가 코를 힘들여 깎아내는 시늉을 하면서 미리 손에 움켜쥔 대리석 가루를 슬며시 흩뿌렸다. 소델리니는 그때서야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은 대리석이 화강암에 비해 그만큼 다루기 쉬운 석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신라의 장인이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에서 조각실력을 겨루었다면, 혹은 미켈란젤로가 신라의 장인들처럼 화강암을 다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바티칸공국에 보낸 ‘한복 입은 성모자상’, 대리석 아닌 화강암, 젖가슴 노출됐어도 호평 얻어 !! 바로 이런 의문을 해소한 작품이 로마의 중심 바티칸공국 대한민국 대사관에 놓여 있다. 오 작가가 조각한 작품 ‘한복 입은 성모(2005)’다. 당시 이 작품의 설치를 두고 한국 카톨릭계가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그럴 만한 것이, 작품을 보면 쪽진 머리에 한복 입은 성모가 아기를 업고 있는 상인데 문제시 된 것은 상반신에서 젖가슴이 노출된 채로 조각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교신자인 작가의 종교관까지 문제시됐다. 신성한 성모자상을 이교도가 제작하는 것도 이상한데 젖가슴 노출로 성모의 신성을 모독할 수 있다는 의견이 대두된 것.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잖아요. 가장 낮은 신분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지요. 그렇다면 조선에 오신 성모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카톨릭이 처음 전래 되었던 시대, 가난한 여인들은 아들에게 젖 물리는 것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당당히 가슴을 내놓고 다녔어요” 우리나라에서 설왕설래 말 많았던 것과 달리 로마 교황청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극찬하며 일거에 논란을 잠재웠다는 후문. 대상을 단순히 겉모습으로만 파악하지 않고 시대의 풍경까지 잡아낸 오채현 작가의 내공이 종교의 경계까지 허문 쾌거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5년이나 까라라에서 유학한 오 작가가 대리석 아닌 화강암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냈다는 것이다. 대리석 조작가들이 무수히 군림하는 로마에, 그 중에서도 바티칸에 경주의 화강암으로 작품을 보낸 오채현 작가의 작품에는 신라의 조각혼이 엄연히 서린 것이다. 오 작가는 이번 봉선사 전시회 외에도 무각사(2020), 월정사(2018), 운문사(2012), 봉은사(2007), 조계사(2000) 등 국내 유명 사찰에서 전시회를 연 바 있고 에이블 파인 아트 갤러리 (2012, 뉴욕), 동신방화랑(2002), 학고재(2007) 초대 등 30여 회의 크고 작은 개인전을 연 바 있다. 아트 시카고, 키아프, 상해 아트페어, AAF Battlesea Fair 등 국내외 전시에도 참여했다. 오 작가의 작품은 조계사 관음전 미륵불, 불광사 비로자나불, 중앙승가대 석가모니대불, 상도선원 16나한상, 심곡암 3층석탑, 인사동 마음치유학교 선정불, 청도운문사 관음보살입상, 오대산 상원사 적조비천상, 영천 만불사 합장불, 국군기무사 석가모니불, 논산훈련소연무대 관음보살상을 비롯 전국 주요 사찰 30여 곳에 고루 퍼져 있다. 이제 회갑의 연륜,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날수록 오 작가는 그러나 뜻밖의 시름에 놓여 있다. 그것은 더 이상 화강암을 가지고 작업하는 조각가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현실 때문이다. 이탈리아 유학 동료 중에서 20%도 안 되는 지망생들이 돌을 선택했지만 그들마저도 대부분 떠나버렸다. “제가 굳이 돌을 선택한 것은 이게 다른 재질보다 훨씬 영속성이 크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업과정이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한창 작업할 때는 돌을 안고 굴러야 하는데 이게 노동 중에서도 보통 중노동이 아니다 보니 누가 선뜻 배우려 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 자신조차 한 때 생계 때문에 강단에 서보니 이 고된 작업과 멀어질 것 같아 불현 듯 떨치고 돌로 돌아왔을 정도라고 회고한다. 예술의 길, 특히 돌을 선택한 길이 얼마나 고달팠을 것인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돌을 대해 왔는지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조금의 여유만 생기면 우선 돌부터 사놓고 보는 오채현 작가는 천상 돌에 미친 작가다. 그런 그에게 경주에 대한 소회를 묻는 것은 오히려 실례다.   “제 조각의 바탕은 경주 그 자체입니다. 지금까지 작업하면서 발생하는 엄청난 소음과 먼지 등으로 인해 여러 도시로 작업실을 옮기다 휴전선 근처 파주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가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은 경주라 믿습니다. 기회가 되면 경주에 그간 틈틈이 모은 각 시대별 작품들과 저의 작업을 곁들여 작은 전시장을 열고 그 근처에서 작업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신라를 뿌리로 이탈리아를 돌아 새로운 신라를 열어가는 오채현 작가를 보노라면 양지스님이 우리시대에 환생하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된다. 양지스님이 열었던 부처의 세상이 오채현 작가의 현대적 기량을 빌어 봉선사에서 열리고 있음은 우리 시대 불자는 물론 조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이다. 주말, 휴식을 겸해 봉산사에서 열리는 ‘해피붓다, 해피타이거’ 전에서 힐링을 체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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