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만귀정(萬歸亭)은 안강현 동쪽 20리에 있고, 고을 사람 장유량(蔣惟亮)이 지었다”전한다. 본래 정자는 1650년대 경주 강동면 유금리 153번지에 있었다. 금와(禁窩) 이헌국(李憲國,1703~1776)이 일을 도와 1760년에 중수하였고, 금파(琴坡) 이정병(李鼎秉,1759~1834)이 중수기를, 내헌(耐軒) 이재영(李在永,1804~1892)이 ‘추차만귀정중수운(追次萬歸亭重修韻)’등을 지었고, 당시 만귀정 주인은 장조우(蔣祖禹)였다. 이후 정자는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1998년 도로건설공사로 인해 마을 안쪽 유금리 96번지로 옮겨 새롭게 지었다. 오산(午山) 배선찬(裵璇燦,1868~1940)은 1900년 봄에 경주를 유람하면서 온전한 모습의 만귀정에 올라 “형산강 가 암석 밑에 꽃과 나무를 심어 꽃다운 그늘이 영롱하였다. 산은 둘러 감싸고, 물은 휘감아 돌고, 들판은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다”며 만귀정 주변의 경치를 읊조렸다. 만귀정에서 멀리 넓은 들판을 바라보면 막힘이 없고, 가까이 굽이 흐르는 형강(兄江)에는 상선(商船)들이 오가는 진풍경을 볼 수 있으며. 동도(東都)에서 승경이 제일이었다. 이처럼 물과 어우러진 정자의 아름다운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한 멋스러움이 있었다. 당시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명고(鳴臯) 정간(鄭榦), 활산(活山) 남용만(南龍萬), 구암(懼庵) 이수인(李樹仁), 해은(海隱) 강필효(姜必孝), 감화(甘華) 이정익(李鼎益,1753~1826) 등 수 많은 문인들이 만귀정을 다녀간 소회를 글로 남겼다. 만귀(萬歸)의 뜻은 ‘회만귀일(會萬歸一)’ 즉 ‘온갖 변화가 모여 하나의 도로 돌아간다(會萬化而歸一道)’에서 취하였고, 정자에 올라 형산강의 여러 지류가 모여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장유량은 이치를 깨닫고자 하였다. 게다가 조종(朝宗) 즉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마땅히 도리처럼 모든 물이 바다로 모여들고 세상의 도 역시 하나로 귀의한다는 마땅한 뜻을 담았다. 이는 『서경』「우공(禹貢)」의 ‘江漢朝宗于海’ 과 『시경』「소아(小雅)」「면수(沔水)」에 ‘沔彼流水 朝宗于海’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을미년(1655)에 쌍봉(雙峯) 정극후(鄭克後,1577~1658)는 만귀정의 기문을 지었고, 『동경잡기(東京雜記)』󰡔잡저보유(雜著補遺)󰡕에도 글이 실려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만귀정기-쌍봉 정극후 나그네가 나[정극후:오천자(烏川子)]에게 말하길, “그대는 일찍이 아산(牙山) 장(蔣)씨의 오래된 정자를 만귀(萬歸)라 이름하였는데, 만귀의 뜻은 어디에 있으며, 거기에 대한 설이 있는가?”하였다. 나는 “나그네 또한 무릇 천하의 이치를 아는가? 온 천하가 천자에게 조종(朝宗)하는 것은 천자가 만물의 으뜸이 되기에 온 나라가 천자에게 귀의하며, 사독(四凟)의 물이 동해로 조종하는 것은 동해가 모든 물줄기의 맡김이 되기에 모든 물줄기가 동해로 귀의하니, 어찌 오직 중국만 그러하겠는가? 조선 역시 그러함이 있다. 우리나라 안이 한양으로 조종하는 것은 한양이 오랜 세월의 도읍이기에 만백성이 한양으로 귀의하며, 진한(辰韓)의 물 역시 동해로 조종하는 것은 동해로 여러 지류가 모이기에 모든 물이 동해로 귀의하는 것이다. 땅은 크고 작음이 있고, 그 이치는 한가지지만, 저 원대한 것으로 이름을 얻기가 불가함이 있다. 지금 또 ‘온갖 것이 모여 하나로 돌아간다(會萬歸一)’의 뜻에서 취하여 내가 이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괜찮은가? 하물며 강은 형강(兄江)으로 이름하였고, 이 강은 여러 지류의 으뜸이요, 동도에서 승경이 갑임을 알 수 있다. 동도 수 백리 안을 돌며 작은 물길도 가리지 않고 모두 이 강으로 귀의한다. 돌아가는 곳의 근원이 졸졸졸 콸콸콸 밤낮을 멈추지 않는 것이 어찌 만경창파에 그칠 뿐이겠는가? 그렇다면 ‘만귀(萬歸)’의 이름 역시 그 큰 수를 거론하였을 따름이다”라 하였다. 객이 “만귀란 뜻은 여기에만 그치는가?”하기에, 나는 “천하의 이치는 무궁하기가 달이 온 시내에 떨어지지만, 밝게 비추는 것은 하나인 것과 같을 따름이다. 이는 하나의 근본이요, 만가지의 다름이다. 지금 이 만귀정은 하나이지만, 만귀의 뜻은 그 단서 또한 많으니, 나 또한 그 개요를 대략 거론해본다. 무릇 개벽 이래부터 수만년뿐 아니라 신라 이래부터 또 수천년이 지났지만, 이 땅에 누구도 건물을 지은 적이 없었다. 지금 주인이 이곳에 처음으로 정자를 짓고 경영하였으니, 이는 만년 동안 귀숙(歸宿)하는 것이다. 사계절이 차례로 바뀌면서 두루 영화롭고 시듦이 한결같지 않고, 눈앞에 삼라만상의 경치이니, 이는 온갖 형상이 귀중(歸重)하는 것이다. 정자는 솟은 듯 강가에 임하니 듣고 보는 자들이 허리를 굽히고, 앞을 지나는 자가 모두 ‘아름다운 정자로다. 하늘이 짓고 땅이 품었다가 때를 기다려 사람에게 남겨준 것인가?’라 칭송하니, 이는 만인이 귀미(歸美)하는 것이다. 1655년 1월 쌍봉노인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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