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대 경주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2021년의 경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특히 지금의 대릉원 일대와 노동동 및 노서동 일대 고분 주변에 살던 주민이었다면 휑하게 비어버린 지금의 모습에 여러 감정이 교차할 것이다. 고분 사이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앉았던 집들과 그 집을 이어주던 가느다란 골목길, 그들 사이에 터무니없이 넓게 펼쳐져 있던 미나리꽝과 술래잡기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솔밭에 놓인 멍석에 앉아 한담 나누던 노인들까지 1970년대는 이곳이 오롯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갑작스럽게 밀어 닥친 유적지 정비사업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고분 사이에 터 잡고 살던 사람들 대부분이 나라 땅 혹은 부잣집 땅위에 건물만 얹은 허름한 집들에 살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어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나가라면 나가고 부수라면 부숴야 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시한 ‘경주개발’계획은 경주에 천년고도 재조명이라는 희망을 준 한편으로 개발에 치인 주민들의 원한과 한숨을 짙게 남겼다. 한 동네 살던 이웃과 친지들이 눈곱만한 보상금을 받은 채 뿔뿔이 흩어지고 삶의 기반이었던 마을은 차츰 무인지경의 들판으로 바뀌어 지금은 완전히 비었거나 꽃밭으로 변해 관광객들을 맞을 뿐이다. 이런 유적지 정비사업은 근현대 역사를 무차별 소멸시켰다는 평가를 지금에 와서야 되돌아보게 한다. 신라를 중심으로 겨우 조선시대 건축정도까지만 문화와 유적으로 알았던 구시대 유적지 판별기준은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정비’의 미명하에 파괴했고 유적과 함께 살며 가치를 고양시켰을 주민들을 쫓아냄으로써 유적에 대한 자부심을 파괴하고 원성을 사게 했다. 유럽의 오랜 도시와 일본의 교토처럼 일찌감치 유적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유적과 함께 적극적으로 보존해온 도시들이 부럽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옛일이 되고 말았다. 전점득 씨의 페이스북에 경주의 오래 전 모습들이 펜화로 올라오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점득 씨는 경주시 보건소 소장 출신으로 수준 높은 펜화를 그리는 펜드로잉 작가다. 전점득 씨가 그린 오래전 계림과 서출지, 안압지 모습은 잊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특히 지난 6월 14일에 올린 경주봉황대 그림은 1950년대를 추정한 것으로 봉황대주변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집들이 상세히 묘사되었고 마치 산길처럼 봉황대를 오르는 오솔길까지 선명하게 그려져 있어 인상적이다. 만약 저 모습이 아직도 유지됐더라면 봉황대에 대해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신라유적은 물론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역사의 현장이지만 근래 혹은 현재의 삶도 역사의 한 부분임을 한 장의 그림으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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