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박물관 기획 ‘우주+人, 과학으로 풀고 예술로 빚다’ 전시회의 예술부분 첫 주자로 ‘먹으로 그린 우주’ 전시∨중 서예는 심오한 선비정신과 온고지신 같은 전통보존의 뜻과 달리 가난해지는 작업이고 고독하고 힘들고 틀에 박힌 작업인가? 우리 시대에 맞는 서예를 구현하여 새롭게 창작의 기운을 불어넣고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변화할 수 없는가? 현대에 맞게 변신한 서예로 명예로운 이름을 떨칠 수는 없는가? 혹은 언제까지 왕희지나 안진경, 구양순 같은 중국의 필법에만 갇혀 우리 선인들의 장쾌한 필선을 살리는 것에 주저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들에 대해 한꺼번에 답하는 놀라운 전시회가 지난 5월 20일부터 7월 15일까지 한양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먹으로 그린 우주’전이다. 경주 출신 박진우 작가가 한양대 박물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우주+人, 과학으로 풀고 예술로 빚다’ 전시회의 예술부분 첫 주자로 전시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SNS에 두꺼운 한지 위 씨앗을 배열하고 붓으로 먹을 뿌려 작업한 사진을 올려놓았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씨앗 은하>(사진)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한양대학교 박물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물론 한 장의 그림만으로 치밀하게 계획하는 전시회에 초대했을 턱이 없다. 박 작가는 비록 늦깎이로 데뷔하긴 했지만 이미 2014년 ‘프롤의 밤-밤에 잠 안 자고 뭐하니?’ 전시와 2019년 ‘성실한 나라의 이상한 청년展’ 두 차례 개인전을 통해 기존의 서예 전시와는 다른 날카로운 차별성을 확인받은 바 있다. 특히 두 번째 개인전에서 박 작가의 기발함과 탁월성은 이전 서예가들의 허를 찌르는 무서운 도발(挑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했다. , <ㅅㅂ, 너나 잘하세요>, <나는 난다>, <먹탑> 등의 작품들은 이전의 서예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시도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 작품들은 작품의 제목부터 대부분 서예가들이 그렇게 하듯 유교 경전이나 고사성어를 일체 사용하지 않았고 작품의 내용도 정형화된 서예풍의 글자들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난다>(사진)의 경우 『장자』의 「소요유」편을 자신만의 필체로 써 내린 다음 빠른 붓의 교차로 미친 듯이 선을 그려 붕새의 형상을 그리는 식이다. 이렇게 거칠게 그려놓고 나니 확실히 구만리 창천을 날아오를 만큼의 역량을 지닌 붕새의 형상이 드러난다. 이 전시회에서 또 다른 눈길을 끈 작품이 <Just do it>이다. 영어제목과 달리 내용은 『맹자』의 「양혜왕」편의 ‘불위야비불능야(不爲也非不能也)’다. ‘하지 않는 것일 뿐 못해서가 아니다’라는 박진우 작가의 의미심장한 일갈이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내비친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작품 <나는 난다>에 대해 작가가 쓴 작품해설을 눈여겨 볼만하다.  “서예를 좋아했지만, 서예를 좋아하는 내가 싫었다. ‘왜 나는 수많은 예술분야에서 유독 천대받고 소멸해 가기 직전인 서예를 좋아할까?’ ‘왜 모두가 반대하는 글씨 쓰는 일을 좋아하는 걸까?’ ‘대중이 알아주는 핫 하고 돈 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일까?’” 그랬던 그가 결국 서예를 만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박 작가가 문방사우와 만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어느 서예학원이었다. 왜 그 서예학원을 가게 되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특별한 동기 없이 다닌 학원에서 박진우 어린이는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화랑문화제 서예부문 경북 1위 등 각종 어린이 서예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자연스럽게 서예를 즐기게 되었고 경주고 때까지 열심히 먹을 갈았다. 고교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에 오면서 운대(雲臺) 정해천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웠다. 그러나 거기까지. 서예는 더 이상 자신의 인생에 최우선일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국립경주박물관 어린이 박물관 학교를 다녔을 만큼 역사공부를 좋아했던 박 작가는 고려대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과를 수료했다. 이때만 해도 서예는 가깝고 익숙한 취미생활일 뿐 직업으로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 연구원,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연구원, 한양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경영지원실 기획조정팀 직원으로 평생직장을 완비했을 때도 서예는 자신의 인생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문화재 관련 일을 하는 활동하는 동안 서예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다 던져도 좋을 만한 무한한 가치를 지녔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그 계기가 바로 2014년 ‘미술연구소 모나드의 창’이 기획한 ‘프롤의 밤 – 밤에 잠 안자고 뭐하니?’ 개인전이었고 여기서 가능성을 확인한 후 2019년 ‘성실한 나라의 이상한 청년展’을 거치면서 전문 서예작가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면서 평생이 담보된 직장과 직함을 과감히 버렸다. 세간의 잣대로만 보면 무모해도 보통 무모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서예를 이전의 방식대로 할 생각이었다면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열어나갈 서예는 분명히 새로운 지평이 될 것이라 확신했기에 결연히 제 길을 가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전업 작가로서의 결심에 부인 오다연 씨도 흔쾌히 동의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최근 화제를 일으켰던 세한도 특별전을 기획한 오다연 씨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듯 당신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해 더 좋은 삶이 아니겠느냐?’며 남편 박진우 작가를 응원했다고. -다양한 종이와 먹, 새로운 기법으로 만드는 탁월한 작품들, 전통 서예와 우리나라 선현들 글자 임서하며 서예내공 키워나가 기존과는 다른 서예를 기획하고 준비하기 시작한 박진우 작가는 우선 종이와 먹에 각별한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박 작가를 만난 서대문구 홍은동 작업실 시숙재(柿熟齋)에는 오래 된 종이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짧게는 10, 20년 국내의 각종 한지를 비롯해 일본과 중국에서 구입한 100~130년 된 종이들까지 쌓여 있다. 스스로 ‘종이덕후’라는 별명을 지었을 만큼 다양한 종이를 구해 놓았다. 어떤 종이들은 좀이 먹어 구멍이 숭숭 뚫렸는데 이런 종이 역시 서예 작품의 모티브에 따라 적절히 사용된다는 설명이다. 또 한 가지 박 작가가 열심히 모으는 것이 좋은 먹이다. 특히 소나무 그을음을 긁어 만든 ‘송연먹’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눈에 띄는 대로 구해두었다. 시숙재를 들어서는 순간 그윽한 솔향이 날 정도였다. 이들 송연먹 역시 일본 제품들이 다수인데 이렇듯 일본 종이나 일본 먹이 다양하고 질 좋은 이유로 먹 만들던 장인들을 우리나라는 홀대한 대 비해 일본은 장인들을 각별히 여기고 대우해주던 풍토가 최근까지 많이 남아 있어 대를 이어 비전과 비법을 전수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이와 먹을 모으는 이유는 작품에 따라 그 의도를 살리기 위한 최적의 재료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풍스런 멋을 내기 위해 오래되고 견고한 종이를 쓰기도 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내기 위해 각양각색의 먹을 사용한다. 당연하게 이들 먹과 종이는 박 작가에게는 어떤 것보다 든든한 무기다. ‘성실한 나라의 이상한 청년展’에서 이 종이와 먹이 이미 요긴하게 쓰였다. 작품 <먹탑>(사진)에는 작가가 소장한 수많은 먹들을 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탑을 세밀히 분석해 밑그림을 그린 후 조형에 어울리는 먹을 찾아서 건탁먹으로 탁본하여 완성한 작품이 바로 <먹탑>이다. 세밀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작업을 하다보면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를 만큼 고되다. 그러나 이렇게 세워진 먹탑은 단연 독보적인 결과로 거듭난다. 박진우 작가는 이 먹탑 작업을 위해 고선사지 석탑과 정혜사지 석탑 등 경주의 여러 석탑의 도판을 일일이 밑그림으로 제작해 둔 상태다. 또한 이번 한양대박물관 전시에 출품된 <The Other>는 송연먹과 유연먹으로 각각의 행성을 그려 먹빛의 다름이 의미하는 다양한 해석을 촉발시켰다. 더불어 는 같은 형상을 각기 다른 먹과 종이에 표현함으로서 서로 다른 인생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그가 담담히 밝히는 포부는 가슴을 뛰게 한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서예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세계화 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모두가 낡고 진부하다고 여기는 서예지만 현대에 맞게 잘 해석한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박진우 작가는 자신의 베이스가 ‘서예’라는 사실을 추호도 부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박 작가는 전통적인 서체를 골똘히 익혔음은 물론 우리나라 선대의 글을 공부하는데도 꾸준히 공을 들인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송강 정철의 글을 임서(臨書)하고 있었고 추사 김정희의 글자를 연구하기 위해 수 십 권의 책을 쌓아두고 공부하고 있었다. 특히 박 작가는 우리나라 선현들의 글자를 임서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도 이 공부가 왕희지나 구양순을 쓰는 것 이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주장한다. 서예가들이 중국 서체에 천착하는 것은 이런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궁극적으로 저는 서예가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서예가 현대적이고 창의적이어도 전통적인 서예가 저의 모체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기발하고 새로운 작품들이 명성을 쌓는 수단이라면 전통서예는 저를 더욱 단단하게 하는 근원이라 믿습니다” 박 작가는 이런 와중에 각자(刻字)에도 남다른 조예를 가지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106호 각자장 보유자인 김각한 선생에게 5년 동안 각자를 배워 이 분야에서도 자신만의 성을 쌓아 온 것. 이 역시 박 작가의 또 다른 강점이다. 뿐만 아니라 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설명하는 글에도 능숙하다. 많은 서예가들이 한문문장과 글씨 쓰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치장하는 것에 서툰데 비해 박진우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분명한 철학적, 조형적 가치를 설명하는 데 거침이 없다. 역사학과 미술사를 전공하여 상당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고, 문화재 관련 일을 통해 ‘전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힘이야 말로 비록 늦깎이로 출발했지만 누구보다 특별하고 누구보다 치열하고 누구보다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 아닐까? “경주는 저에게는 단순한 고향이 아닌, 저와 제 작품의 모든 자양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하고 문화재 관련 일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먹탑>에서 보듯 제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곳이기도 하지요” 기회가 되면 경주에서도 작품전시회를 열어 보고 싶다는 박진우 작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전형을 스스로 보여주는 박진우 작가야말로 신라 천년 문화의 맥을 이어받아 새로운 천년을 깨워나갈 진정한 신라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앞으로 어떤 위대한 모습으로 성장할 것인지 가슴 설레며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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