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였다고 합니다.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러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와 ‘쉬!’, 몸과 우주가 이루어내는 생명 화음 부모는 오줌 때가 되면 어린 자식을 안고 “쉬-” 하는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누인다. 그러면 자식은 그 소리를 듣고 칭얼거리면서도 쪼르릉 쪽쪽 몇 방울의 맑은 오줌을 눈다. 이 시에서 보이는 아흔이 넘은 아버지 오줌 누이기는 어린 시절 그렇게 해준 아버지에 대한 보답이다. 그러나 늙은이와 어린 자식 오줌 누이기는 다른 점도 있다. 어린 자식과는 달리, 정신이 초롱같은 늙은 아버지는 그 행동이 부끄럽고 이제 그만 굴욕의 몸을 놓아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 부끄러움을 들어드리기 위해 아들은 그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도 부리며 노인을 안심시킨다. 자세히 말하면 아들은 이 의식을 하는 가운데 아버지를 자신의 태중에서 낳고 있다. 아들의 몸속에서 아버지는 다시 몸이 가벼운 신생아가 되어 이 경건한 산도産道를 통과한다. 그것이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몸 갚아드리듯”의 진정한 의미다. 오줌 누이기는 우리 인생의 늙어감에 대하여 공양드리는 시간이라 하면 어떨까. 그 의식은 참으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바로 생명성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오줌발 “그 길고 긴 뜨신 끈”은 아들이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매려”는 생명줄이고, 아버지 입장에서는 “힘겹게 마저 풀고 있”는 줄이다. 이 묘한 긴장과 길항이 이 시에는 있다. 나오지 않는 오줌을 누이려 안간힘을 쓰는 아들과 이제 그만 굴욕의 몸을 놓아버리고 싶은 아버지의 심정이 묘한 화음을 이룬다. 아들은 그 때 어릴 때 자기 몸에 사무쳤던 ‘쉬-’ 소리를 낸다. 그런데 놀라워라. 우주가 그걸 알아듣고 조용하라는 ‘쉬!’ 소리를 낸다. 이것 또한 묘한 화음이다. 우주에는 ‘쉬-’ 소리만 남고 다른 모든 소리는 침묵한다. 잎과 줄기, 그리고 뿌리가 말라서 이제 곧 흙으로 돌아갈 고즈넉한 몸을 안고 아기인 듯 추슬러 보는 그 의식 속에서 생은 대를 이어 영원의 몸짓을 하는 것이리라. 이 「쉬」를 쓴 시인이 지난 6월 7일 새벽 지상의 뜨신 끈을 놓고 영면했다. 향년 76세. 한국문단과 그를 아끼는 독자들이 슬퍼하고 있다. 무엇보다 “약소자들의 아픔과 슬픔에 주목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최재봉)하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그가 우주 속으로 합류하고 나니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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