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에서는 1600년부터 1750년까지를 바로크 시대로 분류한다. 즉 바로크 시대는 르네상스와 고전파 시대의 중간에 위치한다. 여기서 1600년은 오페라가 탄생한 해이고, 1750년은 바흐가 사망한 해이다. 먼저 1600년, 오페라의 탄생부터 살펴보자.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카메라타(camerata)라는 방에서 탄생했다. 여러 분야의 예술애호가들이 이곳에서 교류했는데, 1600년에 ‘에우리디체’라는 현존 최고(最古)의 오페라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어서 몬테베르디(C.Monteverdi/1567-1643)가 근대 오페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오르페오(orfeo)’를 1607년에 선보인다.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에 활황한다. 오페라의 중심이 베네치아로 이동하면서 이곳에 20개가 넘는 오페라극장이 건립되고, 평민도 돈만 있으면 표를 사서 관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오페라는 양적으로 큰 진전을 이루었지만, 고대 그리스·로마문화를 계승하려는 초심은 많이 훼손되었다. 오로지 흥행만을 위한 오페라가 자주 등장하는데, 거세된 성악가인 카스트라토(castrato)의 가창력에 의존하는 작품들이 그러하였다. 결국 독일의 글룩(C.W.Gluck/1714-1787)이 오페라개혁을 시도하게 되는데,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1762년에 초연하여 모범을 보인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오페라 탄생기의 오페라 제목이라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강하게 읽힌다. 오늘날도 그러하지만, 오페라는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그래서 오페라의 아류라 할 수 있는 극 장르도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게 되는데, 바로 오라토리오(oratorio)와 칸타타(cantata)이다. 오라토리오나 칸타타는 오페라에서 무대비용이나 의상비용이 빠진다. 즉, 무대나 의상 없이 공연할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내용으로 제작이 비교적 용이하다. 양자는 차이는, 칸타타가 오라토리오에 비해 세속적인 내용이 많고, 규모는 작다라는 것이다. 오페라 흥행 실패로 빚더미에 올랐던 헨델(F.Händel/1685-1759)이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로 재기에 성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오페라를 단 한 작품도 작곡하지 않았던 바흐(J.S.Bach/1685-1750)도 칸타타는 몇 작품을 만들었다. ‘커피 칸타타(coffee cantata)’를 보면 바흐가 오페라를 만들었어도 잘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바흐는 수난곡(passion)에도 능했다. 그의 마태수난곡은 3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100년이 흐른 후에 멘델스존(F.Mendelssohn/1809-1847)이 우연히 발견하여 위대한 유산의 유실을 막았다. 바로크 시대의 시작은 이탈리아 중심의 성악이었다. 앞에서 살폈듯이, 오페라 외에 오라토리오, 칸타타, 수난곡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는 바로크 시대에 큰 진전을 보인 기악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시도, 다양한 형식은 바로크 시대의 큰 특징이다.>>2편으로 이어집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