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닷새 동안 인사동 인사아트센터 1층에 매화꽃이 만발했다. 예술인들이 고사(枯死)상태에 이른 이 엄중한 코로나19의 상황에, 더군다나 인사동 예술문화 1번지로 알려진 인사아트센터에서 심지어 1층을 점유해 전시회를 연 배포 좋은 사람이 경주의 최영조 화백이란 사실은 그 자체로 화제다.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지난 5월 18일부터 23일까지 이른바 ‘5500전’을 연 최영조 화백은 쉴 새도 없이 서울 나들이를 감행했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만55세 나이, 한 살마다 100호씩의 그림을 적용해 5500호 작품전을 열었던 최 화백의 야심찬 전시는 서울에서 55세, 화룡점정의 기세다. 경주에서의 전시보다 비록 규모는 3분의 1정도로 축소됐으나 최영조 화백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함 없는 연작들과 대작들이 출품돼 인사동을 환하게 밝혔다.
“서울 전시회를 감행하게 된 것은 지난번 K옥션에서 4점의 작품을 판매하고 나서 서울 시장의 중요성을 더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코로나19로 서울의 관객도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제 그림을 그림 자체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서울 무대, 특히 미술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인사동 무대가 제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스스로 작품의 격 높여, 캔버스에 아크릴로 구현한 문인화, 새로운 류(流)로 승화시켜 나가야! 최 화백의 말대로 인사동에서 최 화백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상당수 서울의 팬들과 전국의 화가 및 서예가들이 전시회를 찾아와 작품에 빠져들었다. 이 중에는 2019년, 역시 인사아트센터 2층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본 감동을 기억하는 관객들도 꽤 있어서 전시의 연속성을 실감나게 했다. “인사동 전시회는 평가가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저에게 활력을 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지역 전시회가 다분히 인사치레의 격려와 감탄이라면 인사동 전시회는 작품의 기법, 묘사의 치밀함, 운치와 기운까지 짚어내는 관객들의 소감을 생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작가로서는 매우 중요한 경험이지요”
최 화백은 자신의 그림이 오늘까지 발전해 온 것은 끊임없이 관객의 평가를 마음으로 새겨듣고 반영한 ‘소통의 결과’라고 고백한다.
“제 작품을 보고 아쉬움을 들려주는 분들을 만나면 우선은 작가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나빠집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진심어린 현명한 조언들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제 작품이 변화할 가능성이 보이면 그 조언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일까 불과 2년 전 같은 장소 2층에서 전시됐던 최 화백의 작품에는 그때와는 또 다른 격이 분명히 보였다. 문인화의 특성이 밑그림 없이 빠르게 그려나가는 기풍을 기본으로 치는데 이번 전시는 붓질에서 느껴지는 속도가 ‘무서울 만큼’ 빠르고 표현이 한층 과감해졌다. 꽃을 그리기 위해 비워 두었던 둥치를 최소화 하면서도 꽃이 선명해진 점도 뚜렷한 차이다. 최영조 화백이 매화에서 추구하는 ‘청명’과 ‘기운생동’이 전시장에 걸린 화폭마다 홀연히 피어난다. 이런 변화에 대한 최 화백의 대답.
“캔버스에 아크릴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고 지금껏 연마해왔는데 이제 시간이 쌓인 만큼 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일 겁니다”
특히 이번 작품들에는 이전 전시회에서는 원근감을 더 세밀히 표현하기 위해 3번 덧칠한 작업을 한 작품들도 선보였는데 이들 그림의 깊이가 훨씬 그윽해진 면도 두드러진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다면 먹의 농담으로 표현해야 할 기법을 캔버스에 아크릴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구현하게 된 것이다. 캔버스에 아크릴은 이제 더 이상 재료의 영역이 아닌 최영조 화백이 마음껏 뛰노는 놀이마당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최 화백이 문인화에 적용한 ‘캔버스에 아크릴’은 인사동 전시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곳이 인사동인 만큼 그의 시도를 눈여겨보고 자신들의 그림에 적용할 후학이나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하나의 류(流)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더 넓고 큰 무대가 반드시 필요한 법인데 최 화백이 인사동을 선택한 것은 탁월해 보인다. 인사동 전시회는 자신만의 화풍을 창안한 유망한 경주의 작가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면에서 작가들 개인은 물론 미술 관련 단체나 경주시가 함께 체계적인 지원을 고심해 볼 만한 문제로 여겨진다.
전시회 한 쪽은 최 화백의 또 다른 놀이이자 실험의 공간으로 빛난다. 선을 특별히 강조하는 최 화백이 내놓은 추상적 작품 ‘몽현’과 ‘음률’, ‘선률’ 등의 작품이다. 가로 혹은 세로로 그은 선들은 한 마디로 최 화백의 도도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한 번 따라 할 테면 해 보라’는 독선마저 들여다보이는 작업이다. 같은 공간에 선을 긋지만 이처럼 일관성 있게 비슷한 속도와 두께로 긋는 것은 경지에 이르지 않은 한 힘든 작업이다. 이것은 단적으로 최 화백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작품 ‘몽현(夢現)’은 정종섭 국학진흥원장님이 특별히 화실에서 깨우쳐 주신 대화에서 적용한 작품입니다. 가로 획을 그어놓고 이 선들 속에서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그림을 연상할 수 있지요”
정종섭 원장은 두어 달 전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최영조 화백을 언급하며 경주의 언론이 먼저 나서서라도 부각시킬 중요한 문화적 인재라며 현재 경주의 살아있는 예술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서예의 정점에 선 정종섭 원장의 고향 후배를 아끼는 마음이 또 다른 작품으로 승화된 것 자체도 기록할 만한 화제다.
이번 전시회에서 최 화백이 또 다른 탁월함을 보여 준 선택이 있어 눈길을 한 번 더 끌었다. 그것은 도록 전면 추천서에 한글 이외에 영문과 중문까지 함께 개제한 것이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최 화백이 자신을 좀 더 차원 높은 무대로 옮겨가기 위한 ‘계획적’ 시도로 보여 반갑기 그지없다. 코로나19시대, 비록 이번 전시회에서 도록의 이 영문과 중문을 눈여겨 볼 외국인이 없어도 미리 한 단계 높은 것을 준비할 수 있는 뚝심과 자신감이야말로 예술인이 가진 확연한 차별성 아닐까?
-경주 미협 이끄는 좌장, 지역 작가들 위한 봉사와 새로운 인재 발굴에도 기여. 받은 사랑 돌려주는 작업에도 박차 이제 화단에서도 좌장격이 된 최 화백은 그간 자신의 생활 저변도 상당히 달라졌다. 어느 새 중견(中堅)으로 자리 잡은 최 화백은 경주 화단을 이끄는 견인차의 역할도 하고 있다. 한국미협 경주지부장 역할은 경주의 화단을 대표하는 그에게는 작품 외적으로 감당해야 할 마땅한 숙제가 되었다.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내놓을 때 더 빛나는 법이다.
다행히 그는 이 역할에 충실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도 기획해왔다. 지난 4월 13일부터 18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달에서 경주미술시장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그림사기 좋은 날’전을 개최한 것은 지역 미술 작가들에게는 매우 획기적인 이벤트였다. 모두 32명의 경주 작가들이 참여한 이 전시회는 작가들의 소품을 구매자들이 부담가지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기획함으로써 ‘작품을 팔고 사보는 경험’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작가들은 작품의 판매보다 전시에 급급하고 관객들은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선에서 구매를 낯설어 하는 풍토에서 소품들을 출품해 그림을 팔고 사는 재미를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이 행사의 요점을 찾을 수 있었다.
또 지난 4월 24일에는 ‘대추밭장학회’를 이끌어가는 대추밭백한의원 백진호 원장에게 제안해 대추밭장학회에서 올해의 청년 작가상을 만들어 단청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김서한 작가를 선정하기도 했다. 백진호 원장은 김서한 작가 기획전을 경주예술의 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열고 인사글에서 최영조 화백의 제의를 언급하며 미래세대와 대한민국 문화도시 경주를 위한 경주 예술인들의 열정을 강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 화백은 5500전에서 우산에 매화도를 그려 판 수익금 전액을 미술협회에 내놓겠다고 선언해 행사의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이런 작업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기여하려는 마음이 미협경주지부를 이끄는 좋은 사례로 축적될 것임에 틀림없다.
경주에 이은 인사동의 전시까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최 화백의 이번 5500전은 아름답고 인상 깊었다. 스스로 지은 남리(南里)라는 호가 지금까지 갈고 닦은 기량을 통해 한반도 남쪽을 넘어 또 다른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전초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단 최영조 화백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경주의 살아있는 문화예술이 확장일로로 치닫기 바라는 것은 모든 경주사람의 바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