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관광지가 아니어도 좋다. 아니 그래서 더욱 좋다. 최근 여행자들은 그동안 덜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을 여유롭게 찾는 것이 유행이다. 경주에도 이런 다양한 언택트 여행지가 늘려있다. 마치 노다지 광산처럼..., 그간 유명 유적지에 가려져 우리가 몰랐던 시골마을과 시골 골목들이 바로 그런 여행지가 될 것이다. 자연스런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어내는 이들 시골마을 골목들은 오랫동안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민낯 같은 깊은 속내를 만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때로 정겨운, 때로 고단하고 힘든 주민들의 속깊은 삶의 터전 사이를 가만히 걸어보고 그 고장의 향취를 직접 느껴보는 시간은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나와 비숫한 사람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네의 골목 이야기는 그래서 언제나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지금과 같은 비대면 시국에는 더없이 훌륭한 ‘내게로의 여행’지가 될 것이다.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교수가 ‘시골의 역습’을 언급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시도되는 로컬을 응원해줘야 해요. 로컬이 명품이다. 로컬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아줘야 합니다. 선진국일수록 고유의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요. 우리도 한 단계 나아가려면 다양성을 지키려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것은 지금의 이런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기자도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지난 2020년 11월까지 경주의 동네 골목들을 돌아다닌 지 반 년 만에 다시 시골마을 골목을 걸어 보았다. 5월 마지막 날, 천도교 용담성지 가는 길 양쪽으로 형성돼있는 가정3리 골목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용담정은 여러 번 찾았지만 한 번도 걸어 본 적 없는 마을이었다. ‘용담정길’, ‘마룡길’로 나눠진 골목길은 ‘시골’스러웠지만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었다. -‘가정리(柯亭里)’는 정자나무 마을, 용처럼 생긴 말의 발자국이 남아 있어 ‘마룡골’ 가정3리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 선생의 탄생지이자 천도교의 발상지인 용담정 주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있어 한번쯤은 꼭 들러 보고 싶은 동네였다. 현곡면 이 마을은 경주시의 북서쪽에 있다. 남동부의 형산강을 경계해서 경주시와 접하고 서부는 어임산과 구미산의 준령을 경계로 해서 건천읍, 서면 및 영천군 고경면과 접하며 북부는 금곡산 준령을 경계로 해서 안강읍과 접하고 있는 곳이다. 가정리(柯亭里)는 정자나무 마을이라 해서 이름이 붙었다. ‘갓질’, ‘지곡’ 이라는 이름은 갓과 같고 그 밑 마을이라 해서 ‘갓골’이라 했다고 한다. ‘마룡골’이라는 이름은 용담정 위 용치에서 용마가 났다 해서 ‘용마골’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이곳에 용처럼 생긴 말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전한다. 가정3리는 천도교 용담성지 입간판이 서있는 가정3리(용담정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시작된다. 가정3리 버스정류장에서 용담정까지는 약 1.3km. 용담정으로 올라가는 포장도로 양편의 가로수는 은행나무다. 한창 짙어지고 있는 초록의 은행잎들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제법 운치를 더해 줄 것 같았다. 수 년 전부터 이곳 은행나무 길을 보러 오는 사람이 급증했다고 한다. -동학성역화 사업인 수운기념관 및 교육수련관 건립공사 현재 공사 중, 마룡길 초입에 ‘느림보상점X잔물결카페’ 수개월 전에 문 열어 한편, 경주디자인고등학교 맞은편으로도 이 마을에 들어올 수 있는데, 그 마룡길 초입에 ‘느림보상점X잔물결카페(김병기 대표)’가 수개월 전에 문을 열었다. ‘잔물결’ 커피는 주인장이 손수 정성을 다해 내려주는 커피로, 느리게 만든 우리밀빵을 곁들여 먹으면 금상첨화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젊은 주부 몇몇이서 커피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에서 이 마을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커피 향이 조화로워 보였다. 이 카페 입점은 동네 작은 변화의 신호탄 같아 보였다. 이내 가정3리 마을회관을 시작으로 마을 골목길이 열린다. 마을엔 잘 가꿔진 정원이 있는 집들이 많았다. 장미의 계절이라 그런지 특히 여러 종류의 장미가 지천이었다. 주인이 일하러 가고 없는 마당엔 고양이들이 느릿느릿 한가롭게 졸고 있고 인기척에 미동도 없다. 좁거나 다소 넓어지는 골목길 어귀에는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가지를 뻗은 뽕나무들이 검붉은 오디를 매달고 있었다. 아직도 남아있는 흙담벼락도 감상하고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오래된 주택에선 주인의 삶의 사연을 유추하게 한다. 자칫 건조하고 단조롭기 쉬운 골목길에는 정원이 잘 가꿔져 있는 아담한 집들이 많아 생동감을 더했다. 골목길은 마룡길서부터 쭈욱 이어지고 머지않아 작은 사거리를 만난다. 용담정 오르는 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용담정길, 왼쪽은 마룡길로 나눠져 있다. 용담정으로 오르는 도로 맞은편 골목길인 용담정길로 이어진 마을은 길쭉한 지형이었다. 용담정길을 따라 마을은 이어졌는데 이내 좁은 도로를 지나 야산 사이로 길게 난 길이 있고 그 길은 수운 선생 성지 역사문화관 건립 현장으로 이어졌다. 근대사상의 뿌리인 동학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동학성역화 사업인 수운기념관 및 교육수련관 건립공사를 재착수해 현재 공사 중이며 거의 완공돼 가고 있었다. -“이 마을 풍경에 반해 정착했는데 살아보니 예전 시골 인심이 살아있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해요” 주민들은 밝고 경계 없이 친절했다. 마룡길 골목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마을에 산 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마을을 20여 년 전부터 눈 독 들이다가 이 집을 구입한지는 수 년 전이라고 한다. 퇴직하고 정착한 동네라며 밝게 웃는 중년의 부부는 “주위 어르신들 인심이 너무 좋아요. 이 마을 풍경이 좋아 들어와 살고 있는데 살아보니까 예전 시골 인심이 살아있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해요”라고 한다. 그 집 바로 연접해서는 오래된 수로에 농수가 졸졸 흐르고 있어 이색적이었다. “아직 연세 많은 이곳 토박이 주민이 대부분이예요. 동네 개울에서 아직도 손수 빨래를 하는 분도 계세요” 이 집 맞은편, 잘 가꿔진 정원이 너무 아름다운 집 주인은 이 동네로 이사 와 정착한 지 오래라고 했다. 이 마을에 정착한 지 30년 이 넘었다는 하는 이 마을 이장의 아내는 고추밭에 거름을 뿌리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농사 잘 되고 공기 좋고 인심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그래서인지 새로 입주하는 젊은층도 있어요”라고 했다. 골목길 여기저기 마을 작은 밭들에선 고추를 심거나 갖가지 모종을 돌보는 일들을 하는 주민들이 보였다. 마을은 길게 이어져있고 집들이 제법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면 드문드문 좁게 난 길을 따라 집들이 간간이 이어진다. -“아담한 집이었고 집 앞 개울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올해도 마을회관은 여전히 봉쇄 되어있어 마룡길, 굽어지는 모퉁이 골목에서 특이한 외형의 집에 시선을 빼앗긴다. 자두 나무 수형을 아치형으로 만들어 놓은 특이한 집에 문득 발걸음이 멈춘 것이다. 2006년 이 마을에 정착했다는 경주도예가협회 회원이자 ‘대왕도예’를 운영하는 김종대, 박옥자 부부의 터였다. 익산서 살다가 이곳 경주로 이사 온 이들 부부는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건네주었다. “조용하고 공기 맑아서 좋아요. 이 집을 사고 나서 석류나무, 감나무, 자두나무 등을 기념식수했어요. 나무들 자란 거 보면 우리가 이 집에서 산 세월을 느낄 수 있지요. 나무와 함께 나이들죠” 이들 부부는 비어있는 폐가를 수리해 살고 있고 외양간은 작업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아담한 집이었고 집 앞 개울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예전에는 이 개울의 폭이 엄청 넓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좁은 개울이 된 거죠” 부부는 특히 분청사기만을 고집해 작업하고 있다. “코로나로 작업을 거의 하고 있지 않아요. 일체의 행사에 참여를 못하니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곧 상황이 좋아지겠죠”라고 하는 이들 부부에 길이 축복 있으라! 이 마을 주민들은 수운 선생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용담정 자랑을 첫 번째로 꼽았다. 지난해 찾은 여느 마을처럼 올해도 마을회관은 여전히 봉쇄 되어있었다. ‘경로당 전면 폐쇄’ 라는 안내문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제 막 산딸기는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무논에는 모심기를 거의 마쳤고. 현곡면 가정3리 마을을 한 바퀴 돌고나니 초여름의 열기가 벌써 만만찮음이 전해졌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