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 속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픈 내’가 나을 것 같은 이름 선명한 그림이 그려진다. 시인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면서 그분의 글에 감동하여 그 글의 울림을 자신도 모르게 일기장 속에 적는다. 그러면서 그분의 글과 자신의 글의 만남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을 내보이고 있다. 대체 그분이 어떤 아름다운 존재이길래? 먼저 ‘아름다움’이란 뭘까를 생각해 본다. 그건 마음에 들어오는 빼어난 외모나 모양, 색깔일까.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하다’는 말일까. 시인은 자신의 시작 행위를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라 명명하는 것을 보니 후자에 더 가깝겠다. 그래서 시인은 「미인처럼 잠 드는 봄날」이란 시에서 “나는 두세 시간 푹 끓은 백숙 자세로 엎드려 미인을 생각하느라 무릎이 아팠다”고 쓴다.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에서 선생을 생각하면서 썼다는 「미인처럼 잠 드는 봄날」의 ‘미인’은 물론 권정생 선생이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생과 문장의 ‘아름다움’의 단초는 이러듯 “이상한 뜻이 없는 생계”이고, “익숙한 문장들”에 있다. 시인은 특출한 사람의 특출한 문장에 가슴을 뎁히지 않는다. 다만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거짓 없는 주변의 이웃들의 진솔한 삶에서 자신이 깨어나고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분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감동과 실감은 순간순간 깨어난다. 그 중 시인이 가장 위로를 받는 구절은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는 당신의 글. 우리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 가족은 어땠는지 아무런 정보도 제공받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감동은 특별하지 않고 크게 다르지 않는 평범한 것에서 온다는 사실. 외투의 색이 비에 맞아 흰 속옷에 묻을 때의 시리고 찬 실감! 당신의 삶을 느낀다는 것만으로도 시인은 아프다. 여기서 아프다는 말은 공감이 뼛속같이 스며들어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을 정도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고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비문(非文)은 어떤 문장보다 따숩고도 기억 촉진적이다. 굳이 말로 하자면 당신은 약 같은 존재인 것을. 그때 당신의 존재만으로 당신의 이름만으로도 며칠은 내 아픔이 가셔질 것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을! 이 시는 이 작품을 읽고 있는 아픈 시절을 지나고 있는 독자에게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던 존재가 누구냐고 묻고, 그 물음 끝에 함께 끄덕이며 공감하게 한다. 그렇다. 어려운 시절 누구나 겪어봤을 개인의 삶은 ‘나’와 모든 이에게로 전염되어 개인의 고통을 객관화하고 타인과 섞고 위무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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