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의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을 비롯한 다양한 건축 유산과 반듯한 격자형 블록의 도시구조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는 1800년대 후반에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구도심 북쪽에 새로운 시가지를 계획하였는데, 당시 토목기사였던 세르다(Ildefons Cerdà, 1815~1876)에 의해 계획된 격자형의 도시설계안인 아이샴플라(Eixample)가 적용되어 지금의 바르셀로나가 만들어졌다.
최근 바르셀로나는 기존의 격자형 도시에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바로 슈퍼블록이라는 것이다. 만싸나(Manzana)로 불리는 기존의 정사각형 블록을 가로, 세로 3개씩 총 9개를 묶어 하나의 블록으로 설정하고, 내부의 도로를 통과교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행자와 최소한의 필수 차량만 다닐 수 있게 만든 대규모의 블록이다. 이전에 블록 간 내부 도로들은 차들이 점령하였으나, 슈퍼블록이 만들어진 이후부터는 내부 공간이 차로부터 안전한 곳이 되어 아이들의 놀이터, 한낮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노천카페, 주민들의 운동공간 등 다양한 활동들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시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슈퍼블록의 도입으로 안전한 보행공간은 3배 이상 늘어났고, 공기 질도 개선되었으며, 차량으로 인한 소음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서울시청에서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에 이르는 1.55km 구간 9~12차로의 도로를 7~9차로로 과감히 줄이고 보행로 폭을 최대 12m까지 확대했다. 단순히 보행로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와 꽃을 심어 보행의 질까지 같이 높였다. 더군다나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보행로 확대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차가 다니는 길도 부족한데, 사람 길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찻길을 좁히고 사람 길을 넓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차를 타는 것보다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 지루하게 러닝머신 위를 뛰는 것보다, 재미있는 도시풍경을 보면서 걷는 것이 몸과 마음 모두에 건강함을 심어주는 일이 된다. 사람들은 산책할 때 강변이나 산으로 간다. 차가 있는 곳은 위험하고 매연이 나오기 때문에 피하고 싶을 것이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시는 건강하게 운동하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둘째, 도시 내에 교통약자에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 차와 사람이 교차하는 곳은 항상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더구나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교통약자들을 위해서라도 차량 교통을 배제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차가 없는 곳에는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다닐 수 있고, 어르신들도 굳이 위험한 건널목을 급히 건너려고 하실 필요도 없다.
셋째, 대기오염이 줄어든다. 전기차와 수소차와 같은 친환경 차량이 증가하고 있지만, 차량 운행 자체만으로도 타이어 마모에 의한 미세먼지 발생과 같은 대기오염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차량 이동이 배제된 도시에서는 미세먼지가 아닌 맑은 공기를 제공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지구의 기후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차량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아니라, 사람들이 걷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상권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사람 구경하러 간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휑한 거리보다는 왁자지껄하게 사람들이 많은 길 자체를 즐기고 싶어 한다. 지나가다 길게 줄이 늘어선 식당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상업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차를 피해서 안전한 곳에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며 쇼핑을 즐기고 싶어 한다.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는 백화점보다는 가로형 쇼핑몰이 인기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주 원도심은 공실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쇠퇴하는 상권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벌어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보행자에게 친화적인 공간조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주 도심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최적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황리단길과 경주읍성과 같이 주변의 볼거리도 있고 즐길 거리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중심 도시로 변모해야 할 시점이다. 경주도 바르셀로나 슈퍼블록과 같은 혁신적인 실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