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까지의 서양음악사는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고대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말한다. 이어서 중세가 도래했지만 기독교 유일신이 지배했던 당시는 문화예술의 암흑기였다. 음유시인의 노래만이 한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으로 중세의 벽은 무너진다. 세상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다. 고대의 부활, 바로 르네상스시대가 열렸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중세와 많이 달랐지만, 음악은 대동소이했다. 중세처럼 여전히 교회음악이 주류였고, 합창과 같은 성악이 기악을 압도한 시절이다. 그런데 르네상스의 말기부터는 전례 없는 다양한 음악이 출연한다. 우리는 그 시대를 바로크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악기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다. 바이올린이 주된 악기로 자리 잡고,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명기가 탄생한 것도 이 즈음이다. 또한, 쳄발로(영어로 하프시코드), 류트, 비올라 다 감바는 저음악기로 바로크 음악에 진한 색깔을 부여했다. 바로크는 포르투칼어로 ‘일그러진 진주’란 뜻이다. 예쁜 진주가 아닌 못생긴 진주라는 칭한 것은 다분히 그 시대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임을 말한다. 어쨌거나 이상한 시대가 지나가고 원칙과 형식을 중시하는 고전파 시대가 도래한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이른 바 고전파 3총사가 바로크시대의 여러 음악에 형식미를 부여한다. 형식은 통일감이 있어 좋지만 조금 답답할 수도 있는 일이다. 프랑스혁명을 기화로 세상은 낭만주의 시대로 변한다. 신분구조가 무너진 곳에서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문화예술이 움트기 시작했다.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작품들이 형식을 깨며 나타났다. 바로크가 성악과 기악이 균형을 이룬 시대였다면, 고전시대 이후에는 기악이 우세를 보인다. 규모 역시 대형화 추세를 보인다. 말러의 8번 교향곡에는 무려 천명이 출연한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4일 동안 15시간을 공연한다. 낭만주의의 이런 대형화 추세는 바로크시대를 닮았다. 오페라의 아류인 오라토리오, 예를 들어 헨델의 메시아는 2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바하의 마태수난곡은 3시간이 넘는다. 마음 속 감정을 시간과 관계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뱉어낸 것이다. 그래서 낭만주의는 바로크를 한 가족으로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바로크가 비딱하게 못생긴 진주지만, 낭만주의자에게는 개성 있는 진주이다. 2천년 동안의 서양음악사에서 낭만주의시대만큼 감정에 충실한 적은 없었다. 19세기 100년 동안 기존의 형식을 깨뜨리는 다양한 시도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결과는 문화예술의 융성!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현대음악도 무조음악 등 다양성을 실험하고 있다. 다양성은 건강한 음악 생태계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