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지 바탕에 수묵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깊게 파인 주름에서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렘트갤러리(관장 권종민)에서는 이달 30일까지 김은정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영원의 초상 Ⅱ’가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서 김은정 작가는 화선지에 수묵으로 그린 인물화 23점과 아르쉬지에 먹으로 그린 인물화 2점 등 약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인물화는 예나 지금이나 그림의 주요한 소재이자 장르로서 그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전통 한국화의 기본이 되는 먹의 발묵법을 이용해 주로 인물화를 표현하고 있는데, 서양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눈에 띄는 화려한 그림, 기계적인 그림들은 쉽게 싫증을 느끼게 하지만 인물화 작업은 깊이 있고 인간적인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작업이죠.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익혀 작업한 것을 정리해보고 발전을 모색해보는 의미에서 갖게 된 전시입니다”
27년 전, 김은정 작가는 화선지에 퍼지는 먹물의 매력에 매료돼 처음 그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오랜 기간 서양화를 해왔고, 서양화를 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 작업을 해왔다. 그렇게 서양화 방식에 먹물효과를 연출하며 현대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 ‘생명’은 2009년 제4회 서라벌 예술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작품 속 인물의 형상만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과 성품, 인격과 기질, 살아온 세월의 흔적 등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서양화의 유화 물감이나 재료들은 냄새나 성질이 저를 불편하게 할 때가 많았던 반면, 한국화 인물화를 접하게 되면서 화선지, 먹, 모필 등으로 표현하는 수묵 재료는 거부감 없고 편안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재료와 표현이 지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과 저의 작품 활동도 지속해서 성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주제를 선택했죠”
영국화가 조셉 말로드 윌리엄터너의 풍경화 작품에 매력을 느꼈고, 렘브란트, 윤두서의 자화상 작품을 보고 자신도 저런 작품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작가.
“제가 작업한 인물들의 삶의 여정을 보면서 잠시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관람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긍정적으로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34년째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로서 틈틈이 그림을 배우고 작업을 해온 김은정 작가는 자기 삶의 에너지와 행복감을 얻기 위해 시작한 그림이 결국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저와 미술 수업을 즐겼던 학생들, 그 학생들은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풀고, 창의력을 기르며 만족감과 행복감을 표현했어요. 당시 어머니들도 그렇게 사춘기를 잘 넘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곧 교직 생활을 끝내고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옵니다. 그때는 다양한 수묵 작업을 더 깊이 있게 해볼 계획입니다. 저만의 재미있고 창조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김은정 작가는 대구교육대 교육대학원 조형창작교육을 전공했다. 개인전 4회와 경북창작미술협회 정기전 및 테마전, 경북초등교과연구회 회원전, 영·호남 구상작가교류전, 나우개러리 지역작가초대전, 영남미술의 오늘전 등 다수의 단체전, 초대전, 교류전에 참여했다. 서라벌예술상 전국공모전 대상(2009), 대한민국 신조형미술대전 우수상(2013), 공무원미술대전 은상(2003)을 비롯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 등 전국 공모전에 수상했다. 현재 유강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며, (사)한국미술협회, 경북창작미술협회 회원,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