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만의 인생 명소가 있겠습니다. 제게는 토함산의 이웃산인 조항산의 정상부에 건설된 풍력발전단지가 그 중 한 곳입니다. 지인이 이곳 일몰이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말에 솔깃해 찾은 곳인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가는 저만의 위안처가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산 능선을 따라 7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듬성듬성 세워져 있는데요. 탁 트인 전망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차박 명소로 각광받기도 했다는군요. 당일치기 ‘차크닉(차박과 피크닉을 합성한 신조어)’으로는 충분한 곳이니 과하지 않게 짐을 챙겨와 가볍게 산책하고 일몰과 밤하늘 별을 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책로는 주차장 전망 데크에서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 풍력발전기 사이를 거니는 길로 이어집니다. 자연스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느릿느릿 걷다보면 쉬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벤치와 정자가 있어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프레임도 연출할 수 있답니다. 바람개비와 발전소가 이질적으로 조화된 이곳은 낮 시간에도 천연의 구릉과 언덕을 잘 이용해 조성한 꽃과 나무들이 사계절 그 운치를 달리해 황홀한 풍경을 선사합니다. 또 일출과 일몰, 때론 별의 궤적을 담는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산 너머로 서서히 해가 모습을 감출 때쯤 산 능선과 풍력발전기의 모습은 장관을 연출합니다. 철제의 거대한 바람개비를 배경으로 물드는 환상적인 노을빛과 이국적인 풍광은 잠시 경주를 벗어난 어떤 특별한 장소성을 선사해주는 것 같거든요.
밤늦은 시간에도 한번 찾아보세요. 꼬불꼬불 토함산 정상으로 오를라치면 벌써부터 설렐 겁니다. 저는 밤하늘이 너무 좋을 때, 은하수와 별들이 우리와 멀지 않음을 보고 싶을 때 자주 찾아갑니다. 그곳 가는 길에 ‘별보러 가자’라는 곡을 장착한다면 감성은 배가(倍加)될 거구요.
이곳에서 밤하늘 별보는 것만큼 제가 유독 좋아하는 바람개비 타워는 땅에서부터 맨 꼭대기까지 높이 80m의 철 기둥이라고 합니다. 타워의 폭은 높아질수록 좁아지는데요. 바닥의 직경은 무려 4.8m라고 하니 듬직하기 이를 데 없는 조형물입니다. 욕심껏 그 큰 남성적인 조형물을 목이 빠져라 쳐다보면 한없이 우주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거대한 문명의 상징인 바람개비는 ‘쉬익쉬익 쉭’ 바람을 마주하며 온몸으로 저항하는 소리를 내는데요,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구체적이고 물리적으로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낭만적 매개로 충분합니다. 눈을 감고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결도 함께 느껴본다면 더욱 행복할테죠. 봄 밤, 이곳 풍력발전소에서 나직히 속삭여보세요.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