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밀도를 한층 누그러뜨려주는 느슨한 삶의 터전이 있습니다. 동남산자락 통일로에 있는 산림연구기관인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을 끼고 있으며 쉼표를 하나의 호흡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마을이지요.
지척의 수목원 숲은 주민들의 훌륭한 삶의 배경 이었을 것이고 자연과 대화하며 누리고, 온순하고 고요하게 살아가는 그곳은 바로 배반동 ‘갯마을’입니다.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숲을 찾는 이들은 연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그 유명세를 치르는 동안에도 인근의 갯마을 속을 걸어본 이들은 흔치 않아 보입니다. 전체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조용한 이 마을을 중심으로 보리사, 옥룡암, 통일전, 헌강왕릉, 정강왕릉, 은행나무길 등이 이어집니다.
수목원 뒤쪽 계곡이 미륵골인데요, 신라 사찰 보리사는 이 마을서 대밭 옆길로 난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 가까운 아늑한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리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현존하는 남산의 가람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합니다. 절에서 내려다보면 배반들판과 망덕사지, 사천왕사지, 벌지지 등 여러 신라 유적지를 조망할 수 있고요.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49대 헌강왕의 능과 50대 정강왕의 능이 보리사 동남쪽에 있다’고 했는데, 이 절은 두 왕릉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옛날 신라시대부터 보리사라 불리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결하고 선선하리만치 맑은 보리사 경내는 어느 한 곳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산사 어느 곳도 맑지 않은 곳이 없지만 유독 보리사 경내는 고요합니다. 그런데 유독 시선을 뺏는 불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절 대웅전 왼쪽으로 오르면 통일신라시대 후반의 석불을 대표하는 유명한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36호)이 동쪽으로 향해 있는데 큼직한 육계가 표현된 곱슬 같은 나발의 머리에 장방형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잘생긴 불상입니다. 지역민들은 이 불상을 일명 ‘미남부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보리사를 찾을라치면 꼭 이 불상을 보고 가는데요, 시민들이 유독 아끼고 사랑하는 부처님인 셈입니다. 그만큼 팬들이 많은 불상입니다. 반듯하고 잘 생긴 부처님이니 자연스레 인기도 많은 부처님이지요. 특히 보리사 석불좌상은 남산에서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불상이라 합니다. 반듯한 이마, 오똑한 코,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입은 단아하고 자비스러운 모습의 전형입니다. ‘어딘지 인간적인 느낌이 들어’ 더욱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얼마 전부터 만개한 진분홍 철쭉은 이 불상을 휘감아 피어있는듯한데 마치 미남불을 연모하듯 수줍고도 열정적인 모습입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봄날 밤, 불상과 꽃들만이 교우하는 모습은 자비스런 부처님과 행복한 중생의 모습 같습니다. 이 봄 다 가기 전에 화사한 봄꽃들의 호위 받는 보리사 미남부처님 한 번 뵙고 오시죠. 살기도 팍팍한데 말이죠.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