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밥 스무 살의 너에게                                                  문성해 처음 밥을 짓는다는 건어느 늦가을 어둑어둑한 목소리의 부름을 받는다는 거,집에 밥이 없으면식은 밥통에 슬슬 눈이 가는 나이야처음 밥을 짓는다는 건희게 재잘거리는 쌀들 속에보드라운 너의 손을 꽂아본다는 거너의 이름을 밀어 넣는다는 거,너는 이제 밥이 그냥 오는 게 아님을 아는 나이비 갠 여름 오후의 그늘에서 밥이 이팝꽃처럼 스르르 풀려나오는 것은 아니더라도적어도 너와는 상관없이 온다고 알았던 신비스러운 나이가이제 너에게는 없단 거슬프지 않은가,밥이 없는 초저녁의 쓸쓸함을 아는 나이가 된다는 거,그래서 유리창에 어둠의 고함소리가 닥치기 전에 슬픔을 휘젓듯 쌀을 씻고푸푸 밥이 되는 소리에 조금씩 안도하는 나이가 된다는 거이제 밥은 구름이나 바람, 적어도 너와는 상관없는 곳에서 오는 게 아니라저 둥글고 깊은 구형 전기밥솥의 동력으로 지어진다는 것을 알아버린 너는이제 딱딱한 지구의 나이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무엇보다 이 세계의 신비한 마술쇼가 끝났다는 거 -스무 살, ‘세계의 신비한 마술쇼’가 끝나는 나이 세상에 밥만큼 소중한 게 어디 있으며 먹고 사는 일만큼 근본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이 시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는 자녀에게, 아니 세상의 모든 스무 살의 젊은이들에게 ‘첫밥’을 지을 때의 마음을 다정하게 속삭이는 작품이다. 아직 부모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창밖은 어둑어둑해지는데, 슬슬 배는 고파지는데 밥솥은 식어 있다. 옛날 같으면 그냥 라면을 끓여먹거나, 치킨이나 시켜먹으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이제 어느덧 스물이 되었으니. 스물은 밥 있는가를 확인하라는 “어둑어둑한 목소리의 부름”이나 “어둠의 고함소리”를 듣는 나이다. 어둠의 목소리를 굳이 부모의 음성으로 환치할 필요는 없다. 그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내게 보내는 음성이다. 그 때 그는 제 스스로(“이름을 밀어 넣”고) “희게 재잘거리는 쌀들 속에/보드라운 손을 꽂아” 쌀을 안치는 것이다. 그렇다. 스무 살은 “밥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님을 아는 나이”. 가만히 있어도 그냥 따끈한 밥이 주어지던 시절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표지다. 스무 살을 기점으로 세계는 신비에서 현실로 바뀐다. 쌀들 속에 내 손을 밀어넣는다는 건 그것은 내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고, 나아가 세상 물정을 만진다는 것, 세상 속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이 때 밥이란 ‘밥벌이’로 자연스레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밥이 없는 초저녁의 쓸쓸함을” 알아가며 가족들을 떠올리고, 나아가 “딱딱한 지구의 나이를 아는”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렇다. “푸푸 밥이 되는 소리에 안도하는 나이가 된다는” 건 나와는 상관이 없었던 “세계의 신비한 마술쇼”가 이제 끝났음을 인정하고 세상의 쓴맛 단맛에 물들어갈 준비를 해야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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