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파와 낭만파는 어떻게 다를까? 흔히 전자는 형식을 중시하고, 후자는 형식보다는 인간본연의 감정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한번 비교해보자. 미술에도 당연히 고전파와 낭만파가 존재했다. 더군다나 미술은 음악보다 늘 선행한다고 하지 않나.
위의 그림은 앵그르(J.A.D.Ingres/1780-1867)의 ‘레오나르드 다 빈치의 죽음’이고, 아래 그림은 들라크루아(E.Delacroix/1798-1863)의 ‘민중의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두 그림의 차이가 바로 고전파 음악과 낭만파 음악의 차이이다. 얼핏 봐도 위는 꽉 짜져 있고, 아래는 자유분방하다. 이는 양자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또한 위는 역사를 소재(다 빈치의 죽음)로 하고, 아래는 현재의 감정폭발(1830년 혁명)을 소재로 한다. 색상과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위는 차분하지만, 아래는 격정적이다. 앵그르는 음악으로 치면 형식을 외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로 보면 되고, 들라크루와는 기존의 형식을 깨뜨린 베를리오즈나 바그너로 보면 된다. 고전파에서 낭만파의 이행, 이런 흐름의 추동력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있다. 전자는 경제혁명이고, 후자는 정치혁명이다. 르네상스 이후 산업은 지속적으로 발달되어 전에 없던 부르주아 계급이 탄생했다. 이들은 왕이나 귀족이 독점하고 있던 권력을 야금야금 뺏어갔고 결국 프랑스혁명(1789년)을 통해 시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혁명은 그 이름만큼이나 큰 파장을 낳았다. 19세기 초반은 살육과 전쟁으로 점철된 광란의 시대였다. 오페라에선 ‘광란의 아리아’가 쏟아져 나왔다. 확 바뀐 세상에 대해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역사상 인간의 감정을 이렇게 격정적으로 내보인 적은 없었다. 19세기 초엔 낭만주의의 별들이 대거 탄생한다. 1803년에 베를리오즈, 1809년에 멘델스존, 1810년에 쇼팽과 슈만, 1811년에 리스트, 그리고 1813년에 필생의 라이벌 베르디와 바그너가 태어났다. 이들은 고전파가 만든 형식을 깨뜨리고 자유분방한 음악을 추구했다. 이처럼 음악의 생태계가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19세기 음악은 엄청난 진전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너무 자유분방하면 사고도 곧 잘 생기고 사람들이 지겨워하기도 한다. 세기말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인간의 감정에 충실하던 예술적 경향이 서서히 사라지고, 이성과 합리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간 신박한 뉘앙스를 갖던 ‘낭만’이라는 단어는 어느덧 ‘현실감각이 결여된’이란 뜻으로 통하게 되었다. 세상은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