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황오동 철도 관사마을 한 켠, 원효로 169번길에는 ‘철도 이용원’이라는 이발소가 하나 있습니다. 언뜻 보아도 이곳의 이력이 심상치 않음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발소에는 오랜 시간성이 배어 있습니다. 경주역 뒤편 벽화골목 쪽에 위치한 철도이용원은 55년 동안 이곳에서만 영업했다고 하니 주인장의 신념과 뚝심이 어지간해 보입니다.
황오동 경고지하도를 건너 양쪽 대로변 안마을에는 7~80년 된 철도관사촌이 형성돼 오늘에 존속하고 있습니다. 황오동 철도 관사는 일제강점기 경주역에서 근무하던 철도원들을 수용하던 대규모 주거 단지였습니다. 그러니 이곳 이발소도 자연스레 ‘철도’라는 상호로, 이 동네의 정체성에 자연스레 부합했을 것입니다.
일본 적산가옥의 이국적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있는 이곳 관사 골목은 타임머신을 타고 근대로 회귀하는 듯한 감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곳 이발소는 사라지고 있는 경주 근대 풍물의 끝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살림살이도 함께인 이 이발소 문은 지금도 늘 열어둔다고 합니다. 55년간 이곳에서 이발을 해오던 주인장은 올해 86세의 노장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군대 가서 이발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후 이곳서 스물아홉부터 개업해 일해 왔고요.
주인장은 연세에 비해선 건강하신 편으로 동네 산책도 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이발도 해주신다고 하니 반가울 따름입니다. 친정을 찾은 따님은 “아버지께선 연세가 높으셔서 일을 줄였을 뿐이지 아직도 이발은 잘하셔요. 이발 기술은 최고셨죠. 아버지는 주로 머리 깎는 기술이 뛰어나셨는데 ‘바리깡’으로 하는 것에 비해 아버지는 가위로 다 자르셨고 지금도 가위로 머릴 자르시죠. 오늘내일 관두신다고 하시면서도 소일거리 삼아 일하시죠. 요즘도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멀리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건천, 배반, 불국사, 감포 등지에서도 오시죠”라며 우직하게 이발업을 해온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이발소 밖에선, 오래된 ‘통돌이’ 세탁기가 우당탕 굉음을 내며 탈수가 되고 있었는데 수건 등 이발에 관련된 빨래거리를 따로 세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발소 안에서는 아직 연탄난로를 피우고 있었고 한쪽에는 뽀얀 수건을 수 십장 단정하게 포개두었습니다. 언제라도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말이죠. 또 이발소의 이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낡고 닳은 타일이 그대로인 세면대에선 수많은 이들의 머리를 감고 더욱 깔끔해진 기분이었겠죠?
지금은 이발 의자 하나만 덩그르니 남아있지만 예전 7~80년대 이곳에선 8명의 이발사를 데리고 있을 정도로 북적였고 전성기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일을 하다가 이발소를 차려 개업한 이발사들이 많았다고 하니 당시의 이곳 이발소의 위상이 짐작되고도 남았습니다.
일제강점기 경주역과 역사를 함께한 근대문화유산과 생활자산이 산재해있어 차별화된 경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이곳 황오동 관사촌 마을에는 55년된 ‘철도이용원’이 있습니다. 베테랑 이발사 주인장과 이발소의 건재를 기원해봅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