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의 옛 터전인 경주에는 여러 성(城)이 있다. 도성으로 맨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금성을 비롯하여 오랜 기간 왕성이었던 월성을 비롯하여 신월성과 만월성이 있었다. 도성과 가까운 산성으로는 남산 신성과 그 이전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남산 토성이 있고, 당시 월성과 가까이에 토성인 도당산성이 있다. 통일 이전 신라를 가장 괴롭힌 나라는 왜 즉 일본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을 살펴보면 왜의 침입을 받은 횟수가 무려 30여회에 이른다. 따라서 통일 이전 경주 지역에 조성한 도성 외곽의 성은 대부분 일본의 침입에 대비한 것이었다. 감포 쪽으로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해 명활산성을 쌓았다. 명활산성은 한때 왕성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일만 쪽으로 들어오는 적을 대비해 북형산성, 울산만 쪽으로는 관문성을 쌓았다. 또 서형산성, 부산성이 있어 서라벌의 외곽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외에도 건천에 작성, 안강에 토성인 귀성이 있었고,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읍성, 감포에는 조선 중종 때 쌓은 영성이 있었다. 관문성은 경주시 외동읍 녹동과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 경계에 있는 두산저수지에서부터 국도 7호선 도로를 지나 울산광역시 북구 대산리와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경계에 이르는데, 전체 길이가 약 12km이다. 사적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는 관문성에 대한 문헌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조에 처음으로 보인다. “21년(722) 겨울 10월, 대내마 김인일을 당에 보내 신년을 하례하고 아울러 토산물을 바쳤다. 모벌군성을 쌓아 왜적의 침입을 막았다” 또 『삼국유사』 「기이」편 ‘효성왕’조에도 관련 기록이 있다. “개원 10년 임술 10월에 모화군에 관문을 쌓았다. 지금의 모화촌으로 경주 동남쪽 경계에 속하니, 곧 일본을 방어하는 요새였다. 둘레는 6792보 5자이고, 동원된 인부는 3만9262명이며, 장원(掌員, 감독관)은 원진 각간이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기록에서는 일부 오기가 보인다. 개원은 당나라 현종의 연호로 개원 10년은 효성왕 때가 아니고, 성덕왕 21년이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맞다. 관문성을 『삼국사기』에는 모벌군으로 『삼국유사』에서는 모화군으로 각기 지명을 달리 기록되고 있으나 이는 같은 지역을 다르게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동경잡기』 「성곽」조에 ‘관문성은 부의 동쪽 45리 울산 경계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6799척으로 지금은 만리성이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고, 『동경통지』 권5 「성지」조에는 ‘부동(府東) 45리 울산 경계에 있는 석성이다. 성덕왕이 모벌군에 성을 축조하여 일본의 침입을 차단하고 그 후 경덕왕이 임관(臨關)이라 개칭하니 바로 이 성이 그것이다. 둘레가 6799척으로 사람들이 관문이라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이 성을 신라 시대에는 모벌군성, 임관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관문성이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문성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곳곳에 부분적으로 길이 약 20m, 높이 약 3m 정도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경주와 울산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7번 국도와 동해남부선 철길 사이, 그리고 철길 동쪽으로 200m 가량과, 울산광역시 북구 범서읍과 외동읍 녹동에 있는 두산지 부근 일부 구간이 복원되어있다. 성을 쌓는데 대략 20×40cm에서 30×50cm 크기의 다듬은 돌과 평평한 자연석을 별다르게 가공하지 않고 쌓았다. 위로 올라가면서 1-2cm씩 안쪽으로 줄여가는 물림쌓기 방식으로 석재를 5-6단으로 쌓고 그 위에 자연석을 쌓는 공법을 이용했다. 당초 성의 높이는 평균 4-5m가 되었지만 지금은 안쪽이 1.1m, 바깥쪽은 3.6m로 많이 허물어진 상태다. 현존하고 있는 남산성의 석축 성벽과 비교해 볼 때 관문성을 축조한 축성술이 더 발달된 방식으로 보고 있다. 인근 마을에서는 이 성의 석재를 가져가서 축대를 쌓고, 건축자재로 쓰기도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철도를 건설하면서 이 석재를 분쇄하여 활용하였다는 지역 주민들의 증언도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이렇게 파괴해 왔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너머 특히 일제가 자기네 조상들의 유산이라면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분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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