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박라연  성난 불우가죄 없는 세계의 절반을 점거했을 때에도누군가의따뜻함은 흘러가 사과를 붉어지게 하고상처는 흘러가 바다를 더 깊고 푸르게 하는 걸까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어디까지나아갈까아픔에게 포위되지 않으려고 나무를 뚫고물을 뚫고 언제까지 다이빙할까그런데 이 마음은 또 뭐지성난 불우에게 아군이고 싶은 이 마음 말이야마음 너머로끝없이 펼쳐지는 금빛 물결은 누가 보낸 설렘이지위로의 빛은 어디서 오나헤어진 이름을 수없이 부를 때 딱한번은나타나주는 순간 바다였을까내 떨림의물결 한가운데서 붉은 해가 떠올랐다 ============================================ -새해의 일출을 보며 새해가 밝았다. “목메게 불러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길만 가는 게 시간이다.” “눈보라 모진 광풍, 칠흑의 어둠 속에서도 앞만 보며 잘도 가는 게 세월이야.” 신년을 맞을 때마다 떠올리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다. 올 새해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성난 불우가” 청년 실업과 속수무책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 그 “죄 없는 세계의 절반을 점거”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속으로 유폐되고 있는 걸까? 마음이 이미 집을 나와 길거리를 떠도는 영혼은 또 얼마이랴? 그러나 우리는 표면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이 시는 말한다. 이 터널 속에서도 “누군가의/따뜻함은 흘러가 사과를 붉어지게 하고/상처는 흘러가 바다를 더 깊고 푸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세계를 희망적이게 하는 몸짓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밀하게 흐른다.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많은 이름들이” “아픔에게 포위되지 않으려고” 우리를 싸고도는 이 외적 세계와 자연을 뚫고 뛰어내리는(“다이빙하는”) 가운데서도, 성난 불우에게 손을 건네는 마음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불행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불행 속에 더 깊이 침잠함으로써 “마음 너머로/끝없이 펼쳐지는 금빛 물결”, “위로의 빛”을 기다리는 태도일 것이다. 그래서 절망을 절망하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불행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헤어진 이름”은 ‘옛 연인’이라는 ‘타자’가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진정한 나’라고 해야 하리라. 그 ‘이름’을 부를 때 한번은 바다의 물결 가운데서 태양이라는 거대한 희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빈손으로 맞는 새날이지만 신년 바다 위에 떠오른 해가 절망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함으로써 청신한 희망을 낳아라고 엄숙하게 말하는 듯하다. 글=손진은 시인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