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를 오르면 도리천에 이른다. 국보 제23호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과거에는 스님만이 출입하던 곳이다. 그래서 중생이 다니던 연화교 칠보교와는 달리 계단이 높고 가파르다. 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안전을 위하여 계단의 양옆에 원통형의 장대석으로 된 손잡이를 설치하고, 청운교와 백운교 사이에는 수평면을 두어 오르는 사람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계단의 수가 아래 17개, 위쪽이 16개로 이를 합하면 33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다리를 지나 만나게 되는 자하문을 들어서면 수미산의 꼭대기인 도리천(忉利天)이다. ‘도리’는 산스크리트어로 33의 음사(音寫)이며 도리천은 삼십삼천(三十三天)으로 의역한다. 도리천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Sumeru)의 정상에 있으며 제석천(帝釋天:Indra)의 천궁(天宮)이 있다. 사방에 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우리마다 8천(天)이 있기 때문에 제석천과 합하여 33천이 된다. 청운교 백운교의 33개 계단을 오르는 것은 바로 도리천에 이르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계단 수를 세어보면 위는 16단이 맞지만 아래는 18단으로 전체 계단 수는 33이 아닌 34가 된다. 그럼 왜 34계단이 33으로 바뀌었을까? 그 이유는 잘 알 수가 없지만 경전에 나오는 도리천 이야기에 맞추려고 억지를 부린 것은 아닐까? 위와 아래 어느 것이 청운교이고 어느 것이 백운교인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위가 청운교, 아래가 백운교이다. 조선 후기의 문인(文人)인 박종(朴琮, 1735-1793)도 『동경기행(東京紀行)』에서 위가 청운, 아래가 백운이라고 했지만 아래 계단이 끝나면서 무지개다리 모양의 돌이 깔려 있는 부분이 백운교이고, 위의 계단이 끝나면서 자하문 문턱에 다리를 가설하듯 돌을 깐 것이 청운교라고 했다. 또 우리 선조들은 문을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가는 수단으로 인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하문을 나서면 바로 청운교이고 그 아래가 백운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불국사를 정비했을 때의 설계도에도 위가 청운교, 아래쪽이 백운교로 기록되어있으며, 문화재청 자료와 불국사 경내에 있는 안내문 역시 위쪽이 청운교이고 아래쪽이 백운교라고 되어 있다. 사찰에서 결제(結制)나 재(齋) 등 불사가 있을 때, 각자 소임을 적어 붙이는 것을 용상방(龍象榜)이라 한다. 이때 불단을 마주한 어간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청운(靑雲), 왼쪽은 백운(白雲)이다. 청운은 사판승, 백운은 이판승으로 절 살림을 맡는 사판승은 우뚝 선 송림과 같이 총림을 지킨다고 해서 청운이라 하고, 수행에 진력하는 이판승은 흰구름처럼 떠도는 선객이라고 해서 백운이라고 한다. 대체로 사판승보다는 이판승의 격을 높여보고 있다. 그렇다면 위가 백운교 아래가 청운교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서쪽 편에 있는 연화교 칠보교는 아래쪽에 연꽃이 새겨져 있으니 연화교이고 7개의 계단으로 된 위쪽이 칠보교임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청운교 백운교도 아래가 청운교이고 위쪽이 백운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안내문에는 다리의 경사면이 45도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 각도는 30도이다. 밑변과 높이 그리고 빗변의 길이가 3:4:5의 비율로 가장 안정적인 직각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중국의 수학책 ‘주비산경(周脾算經)’에는 넓적다리와 무릎아래 다리를 직각이 되게 하였을 때 ‘구(勾-넓적다리)는 3, 고(股-정강이)가 4, 현(弦-넓적다리와 정강이를 직각으로 했을 때 엉덩이 아래 부분에서 발뒤꿈치까지)이 5가 된다’고 하였다. 즉 직각삼각형에서는 밑변이 ‘구’, 높이가 ‘고’, 빗변이 ‘현’이 된다. 이를 ‘구고현(勾股弦)의 정리’라고 한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위로는 계단을 이루는데 아래로는 다리 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이다. 아래를 살펴보면 다리가 반원인 홍예(虹蜺)인데 전체를 뒤집으면 ‘U’자 형으로 홍예교 및 홍예문의 시원(始原)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홍예 형태의 다리는 먼저 골격이 되는 홍예의 틀을 만들고 그 사이를 다듬는 판석을 치밀하게 축조해 천장을 완성시킨다. 그런데 청운교와 백운교의 홍예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홍예교와는 달리 2중구조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어 홍예교에 걸리는 힘을 분산시킬 수 있어 천년 세월을 견뎌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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