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해관(海官) 파진찬 박숙청이 아뢰었다. “동해안에 있는 작은 산이 떠서 감은사로 향해 오는데 물결따라 왔다갔다 합니다”
왕은 이를 이상이 여겨 일관(日官) 김춘질에게 점치게 했다. “대왕의 아버님께서 바다의 용이 되시어 삼환을 진호(鎭護) 하시고 김유신공도 삼십삼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인간으로 내려와서 대신이 되었습니다. 두 성인이 덕을 같이하여 城(성)을 지키는 보물을 내어주려 하니 폐하께서 해변에 행차하시면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보물을 얻을 것입니다”
왕은 기뻐하여 그 달 칠일에 이견대에 가서 그 산을 바라보고 신하를 보내어 살펴보게 했다. 산 생긴 형세는 거북의 머리와 같은데 위에는 한줄기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왕은 감은사에 주무신 이튿날 오시(五時) 대나무가 합해져 하나가 되자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일어나 어두컴컴하더니 칠일 동안 계속 되었다. (이근직교수는 양력 날짜와 견주어 볼 때 장마권이라 해석)그 달 십육일에 이르러서야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 졌다. 왕은 배를 타고 바다에 떠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검은 옥대를 받들어 왕에게 바쳤다.
“이 산과 대나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합해지기도 하니 무슨 까닭이냐?” 용이 대답하기를 “비유해 말씀드리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나지 않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란 물건은 합쳐야만 소리가 나게 됨으로 성왕께서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는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왕의 아버님께서는 바다의 용이 되셨고 김유신은 하늘의 신이 되어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하여 값을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왕께 바치게 한 것입니다”
만파식적 소문을 들은 반란자들은 두려워 반역을 작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문왕이 태자였을 때 만나 혼인한 왕비, 소판 김흠돌의 딸은 난을 일으킨 장본인 친정아버지와 연계되어 폐위되고, 성대하게 혼례를 치른 알길찬 김흠운의 딸을 신목왕후 새왕비로 맞아들여 7년 봄 2월 맏아들(이름 이홍, 32대 효소왕 )을 낳았다. 아버지 문무왕이 통일을 완성하였기에 삭감된 국방비로 교육에 힘을 쏟아 국학(지금의 향교자리)을 세워 백성들로 하여금 학문의 성취감으로 삶의 질을 충족시키고 국력을 키웠다. 달구벌(지금의 대구)로 서울을 옮기려 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견대 정자 너머로 바다빛은 하늘빛과 맞닿아 물속에서 금방 건져올린 피리 한가락 간절히 불어보면, 가물어쳐도 되살아나는 詩 쓰기의 갈증 잠재워지는가!
“나는 모든 일출(日出)과 일몰(日沒) 앞에 외로웠고, 뼈마디가 쑤셨다. 나는 시간 속에 내 자신의 존재를 비벼서 확인해 낼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몽롱한 언어들이 세계를 끌어들여 내 속으로 밀어넣어주기를 바랐다. 말들은 좀체로 말을 듣지 않았다” -김훈 -풍경과 상처저물도록 걸음 딛던 길들이 허리를 펴는 저녁답, 품고 온 만파식적 피리 한 자루 마음의 풍랑 잠재우는 쉼표로 갈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