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나가 보니 제법 아저씨 티가 나는 녀석이 하얀 청첩장을 내민다. “아이구야 반갑다. 이제야 장가를 가는구나” 나이가 들었는지 이런 뉴스가 참 고맙고 반갑다. ‘황소같이 우직한 그가 먼 길을 걸어 마침내 봄 향기 가득한 그녀 앞에 섰습니다’하고 시작하는 청첩장을, 내 표정을 살피는 녀석을 앞에 두고, 음미하듯 읽어 본다.  아, 주책맞게 내 가슴이 마구 뛴다. 도대체 어떻게 펼쳐질 지 도통 알 수 없는 미래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실실 웃음 짓는 딱, 새 신랑 기분이다. 그저 아내 될 사람 말 잘 들으라고 했다. 그래야 결혼 생활이 원만하다고 했다. 전쟁이나 위기 상황에는 람보나 김좌진 장군이 대장부라면 오늘날 대장부(大丈夫)는 애들 마음 잘 체크하고 잘 놀아주며 와이프 심기(!) 거슬리지 않게 강한 듯 부드러워야 한다고 했다. 남자들의 힐난이 예상되는 이 대목을 다시 복기해 봐도 ‘부드러운 털, 그러나 무시 못 할 발톱’의 코알라 같은 아빠처럼 살라는 비유는 지나치지는 않은 것 같다.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도 해줬다. 글자 그대로 평범(平凡)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내 부모의 예로, 주변의 보통 부모들 이야기를 들어 전해줬다. 가족계획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조심스레 물었다. 남 가정사에 개입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소중한 인연이 있어 자식이 생기고 부모가 된다면 꼭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기가 엄마 가슴에 누워 엄마 눈을 올려다보며 ‘아, 세상은 이렇게 안전하고 따뜻한 곳이구나’하는 사랑의 대화를, 아이의 재롱을 넋을 놓고 보다 문득 ‘아, 내 엄마 아빠도 나를 이렇게 쳐다보고 계셨겠구나!’하는 깨달음을, 심야에 열이 오른 아이를 들쳐 업고 정신없이 내달리다 깨달은 가족의 소중함 등을 말이다. 다 식은 커피가 거의 바닥인 즈음 뜬금없이 녀석이 중얼거린다. ‘자고 일어나보니 일이 이렇게 진행되어 있어 솔직히 하루하루가 두렵단다. 아, 내가 결혼을 한다고? 저 여자가 정말 내 여자일까? 지금이라도 물러야 하는 거 아닌가?’ 겁난단다. 전형적인 노총각의 행동반응이다. 경험상 이럴 때에는 충격요법이 효과적이다. 마지막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주변은 다들 웃으며 축하해주는데 정작 주인공인 너는 이런 현실을 되돌리고 싶고, 어디 아무도 없는 곳에 숨고 싶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줬다. “새 생명의 탄생에는 온 우주가 반응을 하는 법이지. 왜 그런 시(詩)도 있잖아? 한 송이 작은 꽃을 피우려고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슬피 울었어야 했다는…. 그건 아주 작고 연약한 새 우주의 탄생에도 온 우주가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거든. 자, 이제부터 본론인데,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미래의 자네 아기가 그리는 큰 그림이라고 확신해. 자, 생각해봐봐. 애아빠가 될 자네가 지금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주저주저 해야 할까? 엄마가 될 와이프도 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테고…. 심지어 뱃속의 아기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맙소사 애 엄마가 입덧을 하네? 영양 공급을 오히려 엄마가 막아버리네.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이냐고? 흥미롭게도 세상 모든 부모들은 동일한 과정을 거치지. 이제 결론이야 잘 들어 봐. 심리적으로 가장 약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흔들리는 바로 그 시기에 고귀한 새 생명이 깃든다는 거야. 존재론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 이게 우리 인류가 몇 천만 년 동안 증명해 온 우주의 질서이자 규칙이거든” 집에 돌아와 그 마지막 멘트를 자랑스레 들려줬더니 집사람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한참 만에 한다는 말이, ‘이러니 남자들은 어리석단다. 혼수며 문화적 배경이 다른 가족 간의 살얼음 딛는 듯 한 소통방식이며 그 사이에 끼인 주인공 문제에 웬 우주 타령이냐’고 한다. 아, 대장부의 삶은 오늘도 쉽지 않다. “새 신랑아, 남의 일이 아니다. 어쨌든 축하한다. 결혼식 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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