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8일 드디어 경주읍성이 준공된다고 한다. 천 년 전인 고려 현종 3년(1012)에 처음 축성된 읍성이 일부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경주읍성은 축성된 이후 개축과 중건이 거듭되다가 고종 7년(1870)에 보수, 수축했으나 일제강점기 읍성 철거령(1910)에 의해 훼손되어 성곽 일부만이 남아있었다.
읍성복원은 2002년 토지매입을 시작으로 2009년 정비복원을 위한 기본계획을 토대로 2014년 8월 11일에 착공하여 2016년 12월 31일에 준공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읍성준공이 당초 계획보다 2년 가까이 늦었지만 경주가 고도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어 다행스런 일이다.
경주읍성과 같은 문화유산의 복원과 정비는 진정성 왜곡에 대한 우려와 반론이 있지만, 국가 및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역사교과서와 관광객을 유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증자료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월정교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소가 된 것이 그렇다.
최근 완공된 월정교를 경덕왕 19년(760)에 축조된 원형그대로 복원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드물다. 복원된 월정교는 방문객들에게 신라시대 뛰어난 교량 건축 기술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와 흥미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충분하다.
지식기반사회로 접어들면서 문화의 경제적 가치가 증대되고 있다. 다양한 유형으로 증가하고 있는 문화소비욕구 충족을 위한 문화생산 기반구축은 문화산업 발전의 토대가 된다.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가 그 일환이다.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는 지식기반사회에서 경제적 측면에서 지역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진정성만을 고집하는 복원과 정비는 불가능하다. 경주지역에 산재해 있는 복원과 정비 대상인 문화유산이 대부분 목조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에 대한 시각을 전문가보다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바꾸어야한다.
문화유산에 대해 이해와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복원과 정비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국민적 동의를 얻기 쉽다.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고 관심도가 높을 때 다양한 형태의 문화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질 수 있다.
경주지역은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천년 고도 또는 역사문화도시로 불리고 있고, 삼국을 통일한 문화 흔적이 남아 있어 한국문화 원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 정비와 복원 사업은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경주지역이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한다.
경주읍성 복원과 정비 완성은 북성벽과 북문 복원, 장기적으로 남문과 남성벽, 서문과 서성벽 복원, 성내에 동헌인 일승각(一勝閣), 집경전지 정비, 객사와 비보 숲 복원까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는 문화유산 가치 제고와 그 주변지역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활용방안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경주읍성 복원과 정비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방문객에게 경주의 역사적 가치를 제공해주고 주변의 공간적 발전을 가져오는데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에게 만족을 주는 경주읍성 활용은 문화유산이 지니고 있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과 가시적 요소를 묘사하여 전달하는 것보다 현재 시점에서 흥미와 감동을 불러일으켜 그 가치를 높이는 해설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경주읍성의 매력을 높이는 일과 더불어 침체된 도심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는 장소적 발전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교촌한옥마을 조성과 월정교 복원으로 현재 황남동 일원에 집중되고 있는 방문객들이 도심을 통과하여 읍성 주변지역으로 유도되는 탐방코스 조성이 그 중 하나다.
주변지역 문화유산 복원과 정비에 의해 포석로가 황리단 길로 불리는 명소로 부각된 것처럼 일부라도 경주읍성이 준공된 것을 계기로 주변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도록 하는 것도 문화유산 활용이다. 경주읍성 준공을 계기로 주민들과 협의하여 읍성 주변지역이 경주의 명소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