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끝간데 모를 그리움에 몸서리쳐지는 가을이다. 사춘기시절 요즘 같으면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병마로 안타깝게 돌아가신 어머니, 그립다 못해 허무의 물빛으로 휘감기는 사모곡들이 켜켜이 쌓여 詩를 읽고 쓰지 않고는 못 베기는 문학소녀로 성장했을까. 황혼의 늦깎이에도 물물이 도지는 이 증세, 생각 끝에 깊어지는 마음의 풍랑 풀어놓는다.
사유(思惟)의 독방에 갇혀 존재를 확인하고 위안 받는 글쓰기의 목마름은 늘 위태위태하다. 그리하여 몽상의 미학을 꿈꾸는 ‘G·바슐라르, 존재의 작업실’ 책상을 끌어들여, 詩 한 편 잉태하고 낳는 일 하나만으로도 눈물범벅인 영혼.
엇박자 쳐지는 삶의 굴레들을 잠재우고 다스릴 양 만파식적피리가락 얻으려 수중릉 문무대왕암 동해바다 향하면, 즈믄 서라벌 흩어진 기왓장 베게삼아 몸져누운 황톳길들이 일어서고, 탑 그림자 비스듬히 기대어 제 설움 털어내다 멈춘 바람소리도 하릴없이 따라와 지친 발목 *이견대(利見臺) 앞에 세우는 걸음들이 소란스럽다.【삼국유사】
“신문왕이 오색비단과 금옥을 용에게 주고 사자를 시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 바다에서 나왔다.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月城) 천존고에 간직해 두었다. 만파식적,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를 부르고, 장마 질 땐 비가 그치고 바람이 갈앉고 물결은 평온해졌다” 삼국을 통일한 아버지 문무왕 유언에 따라 관(棺) 앞에서 왕위에 오른 31대 신문왕. 나라의 위급하고 긴박한 상황을 짐작케 하는 삼국사기 대목이다.
최측근인 장인 소판 김흠돌이 신뢰 했던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등이 역모해 상(喪)중에 서울에서 예상 못한 반란을 일으켰다. 믿고 의지할 가족인 장인이 난을 일으켰으니 비통하고 참담함은 물론 인간적인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부왕 문무왕이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심어놓은 나라기에 결코 무력(武力)으로 맞서지 않고 예악(禮樂)으로 백성을 다스리려는 덕(德)과 지혜로 하사된 만파식적.
요동치는 험한 정세들을 평안으로 잠재울 만파식적 피리를 불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진정성은 큰 의미를 가진다.
시국의 위급사태를 진압 대처하는 방법 중 내세운, 그 누구도 감히 대항하지 못할 위엄과 용맹스런 위인 해신(海神)인 문무왕, 천신(天神)인 김유신, 실존인물을 죽용(竹龍)으로 등장 시켜 통일신라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려는 의지의 상징물 만파식적, 역사의 중심에 큰 축을 쌓는 선조님들의 나라사랑 일념은 가히 천하를 다스리고도 남음이 있다.
유사내용이 다만 설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실정과 정황들을 반영한 상징성을 부여한다고 이근직교수 【삼국유사】 원문(原文) 강의 견해다.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臺人)에서 따온 말, 신라보물 ‘만파식적’ 얻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