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청와대 불상의 원 위치에 대해 이거사터와 경주 남산을 주장하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청와대 불상’으로 알려진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불좌상’이 경주 이거사터에 이었음을 확인해줄 근거가 나왔다.신라문화유산연구원 주진옥 보존관리팀장이 제공한 일제강점기 자료 ‘신라사적고’에 따르면 도지리(道只里) 이거사터에 다이쇼(大正) 2년인 1913년 총독부로 불상을 이전했다는 항목이 있다.‘신라사적고’는 1933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낸 모로가 히사오가 1916년 자비 출판한 책으로 당시 경주지역 유적에 대한 내용들이 간략하게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도지리 이거사터 항목에 의하면 ‘과거에 완전한 석불좌상 1구가 엄존했는데, 지난 다이쇼 2년 중에 총독관저로 옮겼다. 그 외에 목 부분에 손상이 있는 석불 1구와 후광(장식)이 있는 석불입상 1구, 석탑 1기(도괴됨) 등이 절터 부근 땅속에 묻혀 있었다’는 기록이 일본어로 쓰여져있다.신라사적고를 출판한 모로가 히사오는 당시 경주 금관총 발굴에 관여했고 경주 문화재 사정에 밝았으며, 청와대 불상 반출에 직간접으로 간여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학계에서는 이거사터 석불좌상 이전 시기로 적시한 때와 청와대 불상이 옮겨진 시점이 일치하고, 현재 이거사터에 석탑 기단부와 옥개석 일부가 남아 있다는 점으로 미뤄 신라사적고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이 자료는 일본 덴리(天理)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신라사적고 중 이거사터 관련부분의 복사본으로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주진옥 보존관리팀장의 남편인 고 이근직 경주대 교수가 보관해 온 자료였다.주진옥 팀장은 “요즘 회자되고 있는 청와대 불상의 원위치에 대해 저 또한 궁금했고, 집에 있는 보관된 자료를 훑어보던 중 자료를 찾게 됐다”면서 “이근직 교수의 ‘신라 왕릉의 기원과 변천’(2006)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청와대 불상과 이거사터에 관해 언급이 있었지만 참고자료 목록에 `신라사적고`가 들어가지 않은 점을 미루어 이근직 교수도 논문을 쓴 이후 이 자료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불상이 이거사지에서 왔다는 자료가 확실하게 남아있는 이상 불상 이전을 위한 이거사터 정비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청와대 불상 조사에 직접 참여하고 그 보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한 불교미술사학자 임영애 경주대 교수는 “‘신라사적고’가 매우 중요한 자료이긴 하지만 발굴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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