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 사학과 정재윤교수의 ‘백제문화의 이해’ 강의를 인용하면 백제문화는 ‘검이불루 화이부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삼국사기 백제본기 백제를 건국한 제 1대 온조왕시절 기록을 설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백제시대 천년고찰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 9호)이 삼국사기 기록의 말뜻과 흡사한 숨결이 느껴진다.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오층석탑의 자태. 인고의 세월을 견딘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우아함 속에 온화한 낯빛이 겹쳐 쉼의 안식으로 이끌림 당하는 심신이 고요롭다. 탑신부 모서리마다 민흘림기둥을 세워 위로 솟는 상승감 부드럽게 장중하면서도 처연함이 묻어나는 아름다움은 백제석공들 예술혼의 극치를 마주하는 것 같아 설렌다. 백제 성왕이 부여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세워진 정림사지. 왕실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불탄 허망함 속에서도 전쟁 없는 평화 삼국통일 위안을 삼으며, 선조님들의 지혜와 덕목으로 다시금 세계 속에 대한민국을 찬란히 빛낼 조국통일 향해 법등행렬 끊이지 않으리. 목탑의 한계를 뛰어너머 석탑으로 흐른 흔적들을 간직하며, 기단석 흠집낸 굴곡진 역사를 무던히 아물린 탑의 둘레는 수더분하면서도 당당하다. 소박함을 얼비추는 기풍을 싣고 천년을 호흡하는 세월, 가람 안팍의 풍광이 낯가림 없이 정겨운 건 신라땅에서 찾아 와 스스럼없이 안기는 걸음들의 반가움 때문이리. 먼 거리를 달려 온 손님맞이 배려인 듯 숨 막히는 폭염을 밀치며 부슬부슬 식혀주는 비의 여운, 그 안온한 틈새로 까닭 없이 번지는 번뇌를 헤아려 본다. 적진에 의해 불살라진 가람의 황망함을 한발자욱도 나서지 못하고 속울음 삼키며 오열했을 탑의 심정을 신라여인인들 어찌 외면하고 돌아서랴.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 그립다.- 류시화의 싯귀가 촘촘한 빗방울 되어 흙살을 적시듯 탑의 몸돌 다독이고 쓰다듬는 품새로 슬픔이 베인다. 견뎌온 시간만큼 인고의 내면은 높고 넓고 깊어 하염없이 우러르는 탑의 정수리 걸쳐진 비구름도 걸림없는 흔적인 양 유유자적하다. 백제땅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 넓적한 돌기단 새겨놓은 애닯은 사연 다시 베껴 읽지 않아도 침묵의 아득한 공간 서로 위로하며 교감하는 찰나의 정분(情分)이 향기롭다. ‘검이불루 화이부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았다.’ 품격서린 맵씨로 청정함을 나투하는 고요롭고 무량한 탑의 풍경, 백제·신라 경계를 지우고 한겨레 한민족 선조님들의 얼을 되새김하는 순간이 존재의 잔잔한 감동으로 숨가쁘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