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덥던 여름도 끝이 있었다. 추석이 지나자마자 바람이 제법 차다. 그래서일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반팔 티셔츠를 아직 서랍장에 넣지도 못했는데 밤이 되면 뜨끈뜨끈한 우동 국물을 떠올리다니 말이다. 올해도 아들 녀석은 콧물감기로 가을을 시작한다. 뜨거운 여름 내내 팬티바람으로 자던 습관대로 자다가 감기가 걸린 모양이다. 매서운 겨울, 휴지를 달고 살지 않으려면 미리 예방주사 맞는 셈 치고 초가을 감기 견딜 수 있는 대로 견뎌 보라고 했지만, 애 엄마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감기는 초반에 그것도 신속하게 잡아야 한다며 약국으로 달려간다. 한 줌 알약과 함께 쌍화탕 류의 물약을 내민다. 아들은 아빠 눈치를 한번 보고는 얼른 약을 입에다 털어 넣는다. 아빠보다 엄마 말을 따르는 게 살기가 편(!)하다는 걸 녀석도 아는 거다. 녀석과 같은 처지인 아빠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감기약은 모르고 컸다. 추운 겨울, 뺨은 얼어서 빨갛게 터져있고 코에서 입까지는 왜 그리 누런 코로 얼룩져 있었는지, 위생관념이 없어서였을까 고뿔 정도야 뭐 병축에도 못 끼여서 그랬을까. 어린 우리들은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낡은 손수건을 그저 목 언저리에 두르고 누런 코가 보이는 얼굴로 산으로 들로 휘젓고 다녔던 기억만 가득하다. 400년 전에도 그랬나 보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이렇게 썼다.  “날씨가 추울 때는 부모가 늘 입었던 헌 옷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히고 새 솜이나 새 비단을 쓰지 말아야 한다. 오래된 것을 쓰는 것은 [애들을] 너무 따뜻하게 하면 근골이 약해져 쉽게 병이 생기기 때문이다(「잡병편」, 소아).”  애들 춥다고 새로 파카나 스웨터 이런 거 사주지 마란 소리다. 그저 부모들이 입다 남은 걸로다 애들 입혔다는 거다. 겨울이라고 애들을 따뜻하게 입히면 오히려 병난다는 거다. 갓난아기라고 예외가 아니란다. 허준은 계속 이어간다. “갓난아이는 피부가 약하여 옷을 두껍게 입혀 너무 따뜻하면 피부와 혈맥이 상해 창양[부스럼]이 생기고, 땀이 나 땀구멍이 닫히지 않으면 풍이 쉽게 들어온다. 날씨가 따뜻할 때 아이를 안고 나가 바람을 쏘이거나 햇빛을 보게 되면 기혈이 강해져 풍한을 견딜 수 있고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여보, 지금 듣고 있소?!]은 아이를 품에 안아 아이가 지기(地氣)와 접하지 못하여 근골이 약해져 질병이 쉽게 생긴다. 이것은 아이를 아끼는 방법이 아니다” 애기들 연약한 피부를 보호한답시고 위에서 말했듯이 너무 따뜻하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400년 전 애기엄마들도 흔히 그랬던지, 금이야 옥이야~ 하고 끼고 키우는 것보다 산으로 들로 마구 험하게 크는 게 더 건강에는 좋다는 말로 이해된다. 허준은 부자에게도 같은 논조다. “부귀한 집에서는 절대 새로 만든 모시옷이나 비단옷을 소아(小兒)에게 입히면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병이 생길 뿐 아니라 복도 달아난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아무리 부잣집 귀한 도련님이라도 7~80대 노인이 입던 헌 잠방이나 헌 웃옷을 고쳐 적삼을 만들어 입히면 진기(眞氣)를 길러 주어야 무병장수한다고 적고 있다. 동의보감의 ‘요즘 사람들’이 요즘으로 치자면 애 하나 둘 키우는 젊은 엄마아빠들 아니겠는가. 자기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없이 산 그들에 비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누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아마도 삶의 지혜(智慧)일 것이다. 가령 ‘귀한 자식일수록 무심(無心)하게 키우라’는 말이다. 그게 복 있는 삶일 테고 말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소크라테스도 ‘요즘 애들’때문에 혀를 찼다고 한다. “요즘 애들은 죄다 폭군이다. 부모에게는 대들고, 음식은 아주 게걸스레 품위 없이 먹으며, 스승도 괴롭힌다”라고…. 재미있는 점은 그 요즘 애들이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고 또 소크라테스 같은 스승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멈추듯 이어가며 돌고 또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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