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해설사회는 지난달 20일에서 21일 경상북도와 충청남도가 주최하고 경북문화재연구소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공동 주관하는 신라-백제 문화권 상생협력 학술포럼에 참여하면서 그 일환으로 1박 2일 공주, 부여 역사문화탐방을 떠났다.
문학기행, 유적답사등 봄, 가을 왕래는 잦았지만 폭염속에서 느끼는 천년백제 숨결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와 더위도 감내하는 소중한 행복이었다.
세계속에 던져놓아도 뜨거운 피로 얼싸안는 민족인데, 오랜 역사의 흐름속에 교류와 교섭을 반복 하면서도 대립과 경쟁 갈등의 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백제와 신라, 작은 땅덩어리 한민족의 얼을 되살리며 소통의 연결고리로 서로간 상생하는 문화교류를 화합으로 이끈다면 더 발전되고 전진하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다.
부여 만수산 기슭에 자리한 통일신라 46대 문성왕(서기 839-856년) 범일국사 창건기록이 전해지는 무량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85호)을 마주하면서 외따로 본 감은사지(국보 제 112호) 탑과 닮은꼴에 정감이 간다. 백제탑의 선이 고운 우아함 속에 신라탑의 무게감 실린 장중함이 조화롭게 겹쳐 감은사지동서삼층석탑이 낳은 분신인 양 낯설지 않다.
조성시기는 차이가 나지만 한마음 한뜻 된 통일신라 이후니까 석공들의 교류도 활발했고 한민족 최고의 기술자들이 전국을 두루 뽑혀 다니면서 자유롭게 예술의 혼을 불태웠기에 거침없는 걸작품들이 탄생된 건 기증사실인 것 같다.
무량사오층석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탑신부 몸돌보다 옥개석 얇고 넓은 지붕돌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새는 바람과 비를 가린 넉넉함으로 그려진 풍경이다. 옥개석 귀퉁이 날렵하게 치켜올라간 처마끝 선이 도도한 기품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지붕돌 귀퉁이 풍탁을 달아맨 구멍의 흔적도 또렷해서 감은사지석탑보다 세월의 이끼를 덜 먹은 흔적이 선명하다.
통일신라 직후 위상 넘치고 상승의 기운 점철된 쌍탑의 장엄 웅장한 기상은 아니더라도 생김생김 닮은꼴이 감은사지 東西삼층석탑이 뿌린 씨앗인 양 우람하고 믿음직스럽다. 점잖은 풍채 속에 풍기는 강직함은 올 곧은 하심으로 굳건하다.
백제 부여 무량사오층석탑 양친부모는 신라땅 감은사지쌍탑이라 부모자식간 인연 지어놓고 돌아서는 뒷걸음이 정겹게 당겨 천왕문 문틀 가득 액자로 걸어두는 탑 풍경이 우뚝하다.
소설처럼 살다간 생육신 매월당김시습, 설잠스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천년고찰 무량사, 셀 수 없는 무량의 도를 닦듯 고뇌에 찬 방랑의 걸음을 접고 세상과의 갈등을 문학을 통해 고백하며 경주 금오산 골짜기 은거할 때 창작된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책장을 덮으며 요사채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눈에 익은 신라석탑을 친견하듯 고독한 맘 탑돌이로 달래지나 않았을까!
“마음과 세상일이 서로 어긋나며, 따라서 시를 빼놓으면 이 세상에는 즐길 것이 없다”는 그 영혼의 무량함에 연민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