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송찬호 지난 팔월 아라비아 상인이 찾아와코스모스 가을 신상품을 소개하고 돌아갔다여전히 가늘고 긴 꽃대와석청 냄새가 나는 꽃은밀교(密敎)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헌데 나는 모가지가 가는 꽃에 대해서는골똘히 바라보다 반짝이는조약돌을 머리에 하나씩 얹어주는버릇이 있다 코스모스가 꼭 그러하다가을 운동회 날 같은 맑은 아침학교 가는 조무래기 아이들 몇 세워놓고쉼 없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저 꽃의 근육 없는 무용을 보아라이제 가까스로 궁티의 한때를 벗어났다 생각되는인생의 오후, 돌아보면 젊은 날은 아름답다코스모스 면사무소 첫 출근 날 첫 일과가하늘 아래 오지의 꽃밭을 다 세는 일이었던,스물한 살 지방행정서기보바람의 터번이 다 풀렸고나 가을이 깊어간다대체 저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의 통점은 어디인가나는 오늘 멀리 돌아다니던, 생활의 관절모두 빠져나간 무릎 조용히 불러 앞세우고코스모스 길 따라 뼈주사 한 대 맞으러 간다 -질리지 않는 가을 신상품, 코스모스 언제 그랬냐 싶게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에서 하늘거리는 걸 보니, 그 꽃은 확실히 가을 신상품이다. 해마다 와도 하나도 질리지 않는 상품. 석청냄새가 나는 걸 보니 분명 아라비아 상인이 가지고 온 물건이겠다. 도톰하고 빛나는 꽃송이는 영락없이 “반짝이는 조약돌 하나 얹어”둔 꼴. 그래도 “쉼없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저 근육 없는 무용”이라니. 근심일랑 한쪽에 지긋이 밀쳐두고 중년의 한 나절도 강변 하늘거리는 목이 가는 꽃, 벌들이 석청 냄새의 진원지 밀교(密敎)의 꽃송이에 머리를 디미는 그 속에 밀어넣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리저리 불던 “바람의 터번”이 다 풀리는, “하늘의 통점도 어디인” 줄도 모르는 “저 깊고 푸른 가을 하늘”의 한가운데 서게 되리라. 생각해 본다. 어머니와 어릴 적 동무들은 지금은 죄다 멀리 있다. “첫 일과가 하늘 아래 오지의 꽃밭을 다 세는 일이었던” “스물한 살” 낭만의 내 청춘도 떠나고 없다. 그동안 어쩌자고 나는 멀리로만 쏘다니다 “생활의 관절/모두 빠져나간” 적막한 나이에 이르렀던가. 이젠 중년의 나를 일으켜, 시린 “무릎 조용히 불러세워” 그 꽃의 뼈주사라도 한 대 맞으로 가봐야 겠다. 가을 운동회, 조무래기 아이들, 따가운 햇살, 고추잠자리, 강변 모랫둑 귀뚜라미 소리와도 친한 그 꽃이 어린 시절처럼 오라고 손짓하는 가을날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