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인데, 석굴암과 더불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또 경내가 사적 제502호로 등록되어 있으며 국보 7점, 보물 6점, 시도유형문화재 1점을 보유하고 있다. 불국사는 이와 같이 외적인 화려함과 더불어 불국토를 현세의 사바세계에 화현시킨 열정적인 신앙의 완성체이다. 불국사가 워낙 유명한 사찰이다 보니 이 인근지역의 동 이름이 불국동, 기차역도 불국사역, 학교도 불국사초등학교와 불국중학교가 있다. 물론 이 학교가 불국사 가까이에 있어서 학교 이름이 이렇게 된 것일 뿐 불국사의 부속학교는 아니다. 심지어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이 지역에 불국사교회도 있었다. 불국사(佛國寺)의 사찰 이름 ‘불국(佛國)’은 부처님의 나라를 지칭한다. 흔히 부처님의 나라라고 하면 기독교의 천국을 연상하고 이와 대비되는 극락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부처님의 나라는 여럿이다.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여래의 사바세계, 아미타경에 근거한 아미타여래의 극락세계,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 약사유리광여래본원경에 근거한 약사여래의 유리광세계 등이 모두 불국 즉 불국토이다. 또 중생이 사는 번뇌로 가득 찬 고해(苦海)인 현실세계를 예토(穢土)라고 하는데 대하여 불국은 청정한 세계라고 하여 정토(淨土)라고도 한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 있다. 차안은 ‘이 언덕’이라는 의미로 삼독으로 고통을 받는 현실 세계이고, 생사고해의 고통을 건너서 다다르게 되는 이상세계가 ‘저 언덕’이라는 의미의 피안이다. 피안에 이르렀다는 말이 도피안(到彼岸)인데 산스크리트어로 파라미타(Paramita)이며 이를 음역하여 바라밀(波羅蜜)이라고 한다. 이곳 불국사는 사바세계와 극락세계, 연화장세계, 유리광세계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 종합 불국토이다. 그래서 사찰이름이 불국사이다. 불국사 창건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기록으로는 『불국사사적(佛國寺事蹟)』·『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삼국유사』 등이 있다. 『불국사사적』의 저자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一然)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진위 여부에 대해서 논란이 있으나 불국사에 대해서 가장 상세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정식 명칭은 『신라국동토함산화엄종불국사사적(新羅國東吐含山華嚴宗佛國寺事蹟)』으로 불국사 중수 등에 관한 기록인데 1권 1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19대 눌지왕 때 아도(我道)의 요청으로 제일가람(第一伽藍) 흥륜사와 함께 제일선사(第一禪寺) 불국사를 창건했다. 그러나 불교가 아직 공인되기 이전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물어지고 말았는데, 법흥왕 대에 와서 왕의 뜻으로 불국사 중창의 역사(役事)를 시작하게 되었고 진흥왕이 이것을 계승하여 역사를 마쳤다. 또 경덕왕 때 김대성에 의해 대대적인 역사가 이루어졌으며, 진성여왕 때 네 번째의 중창이 있었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는 『불국사고금역대기(佛國寺古今歷代記)』라고도 한다. 1권 1책의 필사본으로 1740년(영조 16) 승려 동은(東隱)이 지은 것을 그의 제자 만연(萬淵) 등이 다시 교정을 하였다. 불국사의 역사적 배경과 유물·유적 등에 관해서 종합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문헌에 의하면 불국사의 창건을 법흥왕 15년(528년)이라 하고 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迎帝夫人)이 출가하여 불국사를 세웠는데 법명이 법류(法流)였기 때문에 절의 이름을 화엄법류사(華嚴法流寺) 또는 화엄불국사(華嚴佛國寺)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창은 진흥왕 때 하였으며 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비구니가 되어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하여 불국사에 봉안하였고 경덕왕 때 김대성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하여 『삼국유사』에서 김대성이 창건했다는 것과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이외의 다른 부분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답습하고 있다. 신빙성에 의문이 있지만, 불국사 경내의 대가람(大伽藍) 구조에 대하여 상세한 언급이 있어서 사찰의 원형을 살리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삼국유사』는 불국사와 김대성에 관한 설화에서 “절에 전하는 기록에 말하기를 경덕왕(景德王)대의 재상인 대성(大城)이 불국사를 처음 세웠다”고 하여 위의 두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대성은 신라 경덕왕 때 실재하던 인물로 벼슬이 중시(中侍)에 이르렀던 김대정(金大正)으로 추정된다. 선조 26년(1593년)에 왜구가 침략해 노략질을 자행할 때 좌병사는 불국사 지장전 벽 사이에 활과 칼을 감추었다. 왜구 수십 명이 불국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둘러보다가 무기가 감추어진 것을 보고는 불을 질렀다. 장수사에서 난을 피하고 있던 담화(曇華)대사가 문도를 이끌고 달려왔지만 화마는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을 제외한 2천여 칸의 건물을 삼켜버렸다. 금동불상과 옥으로 만든 물건과 석교와 석탑 등은 다행히 불길의 화를 면했다.  김대성이 24년의 정성을 쏟아서 건설하고, 850여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귀의처이자 자랑이었던 불국이 야만 왜구의 손에 의해 한순간 불타고만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1604년(선조37년)부터 복구가 시작되어 150년 동안 복구와 중수의 불사가 계속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다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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