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3호에 이어 죽어서도 동해바다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위대한 생애의 업적을 기리듯 유구의 흔적을 살피면 *“법당인 금당의 구조가 특이한 형태를 띄고 있음이 분명하게 밝혀졌는데 법당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초석이 석재로 마련된 H자형 보를 걸친 형태로 전면적으로 장대석을 깔아 하부에 공간이 마련됨으로써 이 공간이 삼국유사의 기록과 부합되는 유구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특수기단 구조의 동쪽으로 구멍이 마련되었던 흔적도 확인되어 문무대왕의 동해용 전설을 뒷받침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해바다와의 통로를 상징하는 용혈로 추정되는 유구도 확인 되었다” 상상의 동물인 용이 상징하는 의미는 천년을 들썩여 또 천년을 용틀임해, 금당터 마루바닥 공간은 과학적 해석으론 집의 통풍환기 구조겠지만 설화 속 용이 된 문무왕이 쉼의 안식처로 몸을 편히 뉘인 장면을 상상하기 부족함이 없기에 삼국유사 설화 속 이야기는 흉허물 없이 감은사를 돋을새김한다. 저물녘 어스름 짚어 탑 그림자 수북한 가람, 빈 듯 꽉 찬 풍광은 시간과 공간이 길러낸 천년 발자취, 올 곧은 걸음으로 등짐 진 삼층석탑은 흡사 하늘 깊이 뿌리를 두고 밥 짓는 마을의 땅을 굽어보는 흙손으로 합장한 아비, 썩힌 속 먹물인 가슴 경전인 양 펴들고 모난 자식 층층이 반듯하게 앉히기까지 탑기단 곧게 다진 공들인 자욱이다. 국보 제 112호로 지정(1962. 12. 20)된 감은사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은 화산이 폭발해서 쏟아진 재가 굳어 퇴적된 응회암(인근마을 장항리 노루목주변 돌)으로 탑을 조성했기에 화강석처럼 단단하지 못하고 침식이 빠르게 진행되는 돌로 오랫동안 자연환경에 노출된 풍화작용 등으로 생긴 *크리프(creep, 일정한 하중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료의 변형이 증대하는 현상이다.
크리프 현상의 하중은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변형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다음에는 변형의 시간적인 변화가 거의 일정해지다가 최후에 다시 변형이 급속도로 진행하여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감은사탑은 변형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에 돌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상으로 붕괴의 위험에 처하게 되어 여러번 해체 복원되었다. 해체 복원 후 멀쑥한 모습이 오히려 중병을 앓은 이처럼 창백해 더러는 고색창연한 옛 모습이 아쉽다는 관람객들의 취향도 듣는다.
통일 후 찬란한 역사의 흐름을 배경으로 평지 가람에서 산지 가람으로 쌍탑을 앞세워 호국사찰의 기상을 드높여 자리매김한 감은사지, 탑의 아랫단인 기단부와 몸돌인 탑신석은 지붕돌인 옥개석을 받들고 긁히고 패인 흠집에서도 자비의 품안으로 장엄하다.
꼭대기층 상륜부는 네모난 노반을 구축으로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보주, 찬란한 연꽃문양들이 떨어져나가고 철제 주조품(鑄造品)인 찰주만 남아있다. 원추형 철봉으로 밑 부분은 굵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진 형태로 쇳물을 붓는 구멍 청공이 뚫려 주조기법임을 알 수 있다.
단조기법은 무쇠를 불에 달궈 두드리기에 녹이 층층이 쌓이지만 주물제작은 칠한 듯 녹이 묻어있음이 특징이다. 해체시 동쪽 해풍으로 염분을 우려했던 부분은 산하되기 전 햇빛에 말라버렸기에 멀쩡하고 북쪽 변이 그늘에 가려 훼손이 많은 걸로 드러났다. 마음이 먼저 위로 받고픈 해질녘의 시간, 발길 뜸한 절마당 석양에 젖어드는 천년몸돌 가만히 우러르면 온 몸 상처투성이 흉터로도 높고 넓고 깊다.우리네 삶도 저와 마찬가지로 아물린 상처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상처가 키워낸 허물로 당당함이 된 풍경.옥개석 탑지붕 귀퉁이 *풍탁의 흔적을 건드리며 일몰의 그림자도 참선에 잠긴다.*남시진, 2006 「감은사지 삼층석탑 구조」*조유전, 2009 「감은사의 역사문화적 의의」*윤덕향, 2009 「감은사지 발굴조사 성과와 과제」*절이나 누각등의 건물에서, 처마나 탑 끝에 다는 작은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