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박해람
할머니 둘과 일곱 살 아이가버스를 기다린다.아이는 말보다 귀가 늙었다온 동네가 다 아는 엄마 없는 아이지만아이만 모른 척 한다.아이는 성격이 좋아서온 동네의 모른 척들과도 잘 논다.전 정류장을 출발했다는 버스는 기다려도 오지 않고개나리는 어쩌자고 노란 리본을 셀 수도 없이 달고 있나할머니 둘, 주고받는작은 말들 중에아이의 엄마가 언뜻언뜻 보였다가 사라진다. 엄마는 아무 나무도 안 된 것이 분명하지만가끔 아이에게 들러 울먹울먹 다독이다 가곤 하는데아이는 그 울먹울먹하는 때가엄마 같아 좋다. 세상엔 안 들리는작은 사람도 있지만할머니들만 모르는 일들 중엔눈치로 만나는아이와 엄마도 있다.
-어른이 된 아이 결손 가정이 늘어만 간다. 이젠 도시 변두리나 시골을 가면 어디서나 그런 집을 본다. “아이는 말보다 귀가 늙었다”
말은 말[馬]인가 하면 또 말[言]도 된다. 이웃들이 얼마나 ‘아이를 두고 간 엄마’에 대해 수군거렸겠는가. 그러니 이제 그런 소리엔 초연할 정도의 눈치를 가진 아이가 되었다. 시인은 “아이는 성격이 좋아서/온 동네의 모른 척들과도 잘 논다”고 했지만,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눈치가 빨라서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온 동네가 다 아는 엄마 없는 아이지만/아이만 모른 척”한다. 어른이 된 아이. 아아 눈치 구단인 아이..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마음 밑바닥에 그리움이 없겠는가? 이웃들이 아이에게 안 들리도록 “작은 말”로 이야기할 때, 그 말들 속에 “엄마가 언뜻언뜻 보였다가 사라진다” “노란 리본을 셀 수 없이 달고 있”는 개나리는 엄마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 그러나 아이는 눈치 때문에 그 그리움의 화산을 눌러 끌 줄 안다.
한 번씩 아이가 진짜 아이가 될 때가 있다. 엄마가 “가끔 아이에게 들러 울먹울먹 다독이다 가곤 하는” 순간, 아이는 어른을 벗어버린다. 엄마가 왔다가는 발걸음은 세상은 듣지 못한다. 아이와 엄마는 핏줄이 끌어당기는 기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일곱 살 아이”라고만 말했지, 그 아이가 남아인지 여아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버려진 아이들이 늘어난다는 의도이리라. 그러니 어른들이여, 더 이상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