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남에게 준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야. 악착스레 모은 돈이나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지만, 숨은 적선, 진실한 충고, 따뜻한 격려의 말 같은 것은 언제까지나 남게 되니 말이야”
불국사와 석굴암에 얽힌 설화에 대해 글을 쓰자니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 읽은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이 말이 문득 떠오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2대 효소왕(692~702) 때 경주 모량리에 경조(慶祖)라는 여인이 외동아들을 데리고 살았다. 이 아들이 태어났을 때 머리가 크고, 이마가 넓어, 머리 모양이 큰 성(城)같이 생겨서 대성(大城)이라 하였다.
경조의 집은 너무나 가난하여 복안(福安)이라는 부잣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하루는 경조가 착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본 주인은 밭 몇 마지기를 주어 모자가 살아갈 수 있는 살림 밑천이 되게 하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대성이가 17세가 되던 해였다. 복안의 집에 흥륜사 화주승인 점개(漸開)가 와서 시주를 권하니, 복안이 베 50필을 내놓았다. 이에 점개가 주문을 외며 이렇게 축원하였다.
“주인께서 보시하기를 좋아하시니, 천신께서 항상 지켜 주실 것입니다. 물건 하나를 보시하시면 일만 배를 얻게 되는 것이니, 안락하고 길이 장수하게 될 것입니다”
마당에서 일을 하다가 주인과 스님이 대문 앞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은 대성은 얼른 어머니께 달려갔다.
“어머니! 우리가 이처럼 어렵게 사는 이유는 전생에 공덕을 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공덕을 쌓지 않으면, 앞으로도 가난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어른에게 받은 땅을 우리도 부처님께 바치고, 내세에 복을 얻읍시다”
경조는 아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흔쾌히 밭을 부처님께 보시하였다. 대성이 어머님을 모시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대성이가 죽었다.
“집안이 잘 되자고 부처님께 전 재산을 기부했는데 죽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경조가 탄식을 하고 있는데 그때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서라벌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량리에 사는 대성이를 너희 집에 맡기겠노라”
깜짝 놀란 문량은 모량리로 급히 사람을 보내 사연을 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성이가 죽었을 때와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던 때의 시각이 일치하였다.
그 후 자손이 없어 고민이 많았던 문량의 부인에게 태기가 있더니,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가 왼손을 꽉 쥐고 펴지 않더니, 7일 만에 자연스레 손이 펴졌다. 펴진 손 안에는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를 새긴 금간자(金簡子)가 있어, 그 부모는 망설임 없이 아들의 이름을 대성이라 하였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 하늘의 소리를 기억하여, 대성이 전생의 어머니인 경조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새로 태어난 대성과 함께 살게 하였다. 대성은 장성하면서 학문과 덕망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사냥에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밤이 깊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산 아래 마을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 날 밤 꿈에 죽인 곰이 나타나 대성을 잡아먹으려 하였다. 소스라치게 놀라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네가 무슨 심정으로 죄 없는 나를 죽였느냐? 이젠 내가 너를 잡아먹겠다”
두려움을 모르던 대성이었지만, 간이 콩알만 해져서 숨을 헐떡거리며 애원했다.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느냐?”
“예, 말씀만 해 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네가 나를 위해 사찰을 짓고,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 빌어 주겠느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성이 곰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니 곰이 물러갔다. 잠에서 깬 대성은 깨달은 바가 있어, 그 후 사냥을 하지 않고 곰을 잡은 그 자리에 꿈에서 약속한대로 곰을 위해 장수사(長壽寺)를 세우고, 곰의 극락왕생을 빌어 주었다.
미물인 짐승도 영혼을 건지고자 사찰을 세워, 극락왕생을 원하는데,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영혼의 극락왕생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낀 대성은 깊이 뉘우치고, 현세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석굴암을 짓기로 하였다. 사찰 공사는 그가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간이나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사찰을 완공하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계속 사업을 진행시켜 아름답고 화려한 불국사와 장엄미 가득한 석굴암을 완공하였다. *경주시 내동면 마동 토함산 장수곡(長壽谷)에 있었던 절로 몽성사(夢成寺)라고도 하며,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한 사찰로서 창건연기가 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