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유적만으로도 넘치는 세계유산의 도시로 3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 21세기의 첫머리인 2000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 2010년은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독락당, 동강서원이 지정되었다.  그 중에서도 경주는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뭉뚱그려지지만 실제로는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로 나뉜다.  그 중에서 꼭 보고 가야할 곳으로 남산을 꼽는다. 남산은 월성의 남쪽에 있기에 붙인 이름으로 국보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비롯해 보물과 사적지등 불교유적이 즐비하다. 그래서 ‘남산을 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 중에서 내가 사랑하는 탑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꼭꼭 숨겨놓아 외로운... 남산엔 계곡도 많다. 그 중에서도 포석계는 유적도 많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기암곡은 포석정에서 남산으로 길을 잡아 발길을 옮기면서 바로 오른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예전엔 다 쓰러져가는 집과 과수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수리하여 그램핑도 하는 듯, 아이들의 웃음과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반듯한 길은 아니지만 길은 산으로 향하고 있다.  겨우 혼자나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가면 무섭게 자물쇠 채워진 과수원 옆길, 어느 누구의 발길도 거부하듯,.. 보통은 길이 끝났다고 여겨 돌아서면 절대로 가볼 수 없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따라가면 왼쪽으로 축대가 보이면 그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5월이 가까워오면 풀이 무성하여 길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 처음 오는 사람들은 꼭 경험있는 동반자가 있어야 한다. 신라시대에는 서라벌 전체가 사찰로 이루어졌단 생각이 들 만큼 탑이 많았다. 남산은 말해 무엇하랴! 경주에 사는 사람들도 이곳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한 눈에 반할, 귀하게 숨겨 둔 보석같은 탑이다. 대나무 터널을 지나 가파른 축대를 올라가면 눈길이 마주친다.  고운 볼에 살며시 미소가 번지는... 본디 이곳은 ‘장구터’로 오랫동안 불리다가 일제강점기부터 ‘기암곡’으로 불린다. 외진 곳이라고는 하지만 신라시대에는 포석정과 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탑의 앞쪽과 옆으로 석단을 쌓았던 것을 볼 수 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법당은 불타고 탑들도 무너지고 흩어진 채로 신음하며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최근에 수리에 들어가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이곳의 공식적인 명칭은 〈남산 포석계 기암곡 제 2사지 동 3층 석탑〉으로 2012년에 〈경북 문화재자료 601호〉로 지정되었다. 탑을 자세히 둘러보면 본래의 돌이 아닌 새 돌로 수리한 부분이 많다. 특히 경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하층기단 주위에 장대석을 깔아 탑구(塔區: 탑 주변으로 마련되는 구조물로 부처의 무덤인 탑과 속세를 구분하는 경계)를 둘렀다. 그리고 1층 탑신석 남면에는 아주 튼실한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이렇게 어여쁜 탑에 뜬금없이... 물론 홀로 공부하고 기도하여 성불했건만... 중생이 없는 부처는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남산에 있는 많은 탑들은 법당이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용장사의 경우, 위쪽 탑을 짓고 아래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더 아래쪽엔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중생을 향한 나침판처럼 법등도 따로 지었다. 이처럼 남산엔 곳곳에 탑만이 남아 불국토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 기암곡에도 탑도 홀로 아름다운 자태로 나를 유혹하는데... 홀연히 출가한 이름 모를 왕자가 많은 유혹과 흔들림을 천녀같이 아름다운 탑으로 자신을 시험했단 말인가! 자신을 거부한 여인을 돌로 만들어 천년의 사랑을 잇고 있을까?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과 ‘Shall we dance?’ 문득 그녀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번지면서 손을 내민다. 천상의 연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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