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에는 특히 탈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삼국사기』에 1편과 『삼국유사』에 3편의 기록이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에 탈해왕 3년 3월 이런 기록이 있다.
“왕이 토함산에 올라가니, 우산 모양의 검은 구름이 왕의 머리 위에 피어올랐다가 한참 후에 흩어졌다” 이와 같은 형태의 구름은 부처님과 같이 존귀한 분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은 천개(天蓋), 또는 산개(傘蓋)를 유추하게 하고, 또 불상의 두광(頭光)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삼국유사』 「기이」편 ‘제4탈해왕’조에는 다음과 같은 3편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탈해왕이 아직 아이일 때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서 돌집을 지어 7일 동안을 머무르면서 성(城)안에 살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산봉우리 하나가 마치 초사흘 달 모양으로 보이는데 오래 살 만한 곳 같았다. 이내 그곳을 찾아가니 바로 호공(瓠公)의 집이었다. 이후 술수로 그 집을 빼앗았다.
어느 날 탈해가 토함산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인[白衣]*더러 샘을 찾아 물을 떠 오도록 일렀다. 하인이 물을 떠오다가 도중에 탈해에게 드리기 전에 목이 말라 먼저 마시자 하인의 입에 표주박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하인은 이를 떼어 내려고 안간 힘을 다하고 있었다. 탈해가 가까이 다가서자 하인은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이제부터는 가깝거나 멀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주인 먼저 물을 마시지 않겠사옵니다”
탈해가 그의 잘못을 용서해 주자 그제야 표주박이 입에서 떨어졌다. 이후부터 하인은 탈해를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이 샘을 요내정(遙乃井)이라 하였다.
이 요내정에 대해서는 석굴암의 석굴 아래 큰 돌확으로 흘러드는 감로수(甘露水), 불국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석굴암으로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오른쪽 골짜기에 있는 오동수, 동산령과 석굴암 주차장 사이 길가에 있는 샘, 토함산 정상부근에 있는 포수우물 등 4곳 중 어느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탈해가 토함산에서 왕성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면 위 4곳 중 필자의 의견으로는 오동수가 요내정이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문무왕 때 왕의 꿈에, 몹시 사나운 모습을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하였다.
“내가 탈해이다. 내 뼈를 소천구(疏川丘)에서 파내다가 소상(塑像)을 만들어 토함산에 안치하도록 하라”
이에 왕이 그 말을 좇았다고 한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제사를 끊이지 않고 지내니 이를 동악신(東岳神)이라고 한다. 당시 서라벌의 서쪽 선도산에 서술신모가 있었으니 동쪽은 남신(男神), 서쪽은 여신(女神)이 상주하고 있었던 셈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경주읍지』, 『동경통지』, 『금오승람』 등에도 탈해사당이 동악 즉 토함산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은 탈해가 단지 왕이 아닌 신이었다고 믿었던 것이다.요즈음 정치권에서는 적폐청산으로 연일 시끄럽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살기가 어려워졌다고들 한다. 탈해를 찾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효봉 스님에게 제자들이 찾아와 다른 스님을 비난했다. 효봉 스님은 내내 눈을 감고 아무 말이 없었다.“스님 주무십니까?”“아니 듣고 있다”“그런데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까?”“다 얘기 했느냐?”“예,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그래 알았다. 너나 잘 해라”어지러운 나라 형편에 대해 탈해왕께 하소연하면 효봉스님처럼 대답하실 것 같다.
*원문의 백의(白衣)는 하인을 의미한다.
옛날 천역(賤役)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백의(白衣)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