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김현승 아, 여기 누가술 위에 술을 부었나.이빨로 깨무는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춤추는 땅 - 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가슴들을 뿌렸나.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영원히 잠들 수 없는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아, 여기 누가성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저무는 도시와병든 땅엔머언 수평선을 그어 두고,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을누가 이리로 몰고 오나.아, 여기 누가죽음 위에 우리의 꽃들을 피게 하나.얼음과 불꽃 사이영원과 깜짝할 사이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물에 젖은 라이락의 향기저 파도의 꽃떨기를 칠월의 한 때누가 피게 하나. -파도에서 떠 올린 낭만 혹은 삶의 풍경 칠월의 바닷가 파라솔에서 맥주를 마신다. 눈은 연이어 파도가 밀려오는 장면을 본다. 부드러운 S자 모양의 파장이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리. 부서지는 집채만한 물보라, 숨도 돌리기 전에 뱀의 잔등처럼 일렁이며 다시 거대한 파도가 만드는 흰 거품. 그렇구나. 파도가 “술 위에 술을 부어”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거대한 글라스”구나. 이태백이가 와도 저 술을 어떻게 다 마시겠나. 아니 파도는 가슴이구나. 그것도 영원히 잠들 수 없는. 꿈틀거리는 해면은 가슴 속의 감정이나 생각이 생성되는 과정이구나. 그리하여 말은 그 물결에 출렁이는 배가 되어 쏟아져 나오는 것이겠지. 그 생각을 하는데도 계속해서 갈기를 날리며 무리지어 달려오는 저 파도 떼는 또 짐승이구나. “저무는 도시와/ 병든 땅엔” 아예 수평선을 그어버리고 원시적 성욕만큼 깨끗한 생명력으로 뛰어오는 “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 아니다. 우린 아직 그 본질을 다 읽지 못 했다. 파도, 그 마루와 골 사이의 아찔한 죽음의 물이랑 사이에도 “물에 젖은 라이락”, “저 파도의 꽃떨기”는 피어나는구나 한 잔의 술을 마시면서 낭만적으로 바라본 파도의 포말. 그것은 술이었다가, 가슴이었다가, 짐승이었다가, 마침내 죽음에 노출된 우리 존재 속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승화되는 것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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