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에서는 남자들의 수다의 장이 펼쳐집니다. 다소 묵직한 정담이 오가고 너털웃음이 터지기도 하는 곳이지요. 밀레의 ‘만종’이 조악한 액자에 걸려 있었고 어딘가에서 포마드유와 비누냄새가 습하게 섞여 풍기던 이발소 혹은 이발관. 누구라도 그러하듯, 한때 빛나는 청춘이셨던 아버지를 따라가 본 예전 이발소의 풍경이었습니다. 오릉 맞은편에는 이발소 삼색기둥이 연신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탑동이발소’가 있습니다. 작고 허름한 탑동 이발소는 주변의 나지막한 상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듯 친숙합니다. 낡은 소파와 옹기종기 이발을 담당하는 기물들과 타일로 짜여진 낡은 세면대가 정겹더라구요. 키 작은 아이들을 앉혔던, 손때 묻어 세월을 말해주는 아동용 의자는 이제 더 이상 반질거리지 않습니다. 꼬마 손님이 거의 없어 이발소 한 켠에 얌전히 있을 뿐이죠.
‘훅’하는 이발소 특유의 냄새와 함께 하나뿐인 의자엔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한 노인이 염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탑동 이발소는 탑동에서는 유일한 이발소로 인근 황남동에 여러 군데의 이발소가 있는 것과는 대조됩니다. 이 인근 이발사의 평균연령대는 대부분 60~70대라고 합니다.
경주 토박이로 55년 이발사 경력중 이 동네에서만 25년간 탑동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식(75)씨는 백발이 성성한 베테랑 ‘마초’ 이발사입니다. 젊은 시절 하얀 가운을 입고 이발해주는 이발사가 너무 멋있어 보여 이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며 20대부터 서울서 종업원으로 이 일을 하기 시작해서 한때 이발업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이곳 탑동에 오고부터는 지금껏 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젊은 이발사에 못지않은 근성과 자신감에서 오는 당당함이 참 보기 좋습니다.
“시내권역의 다른 이발소보다 1000원이라도 싸야 우리집에 올거 아닙니까. 그 돈으로 막걸리라도 한 잔하고 말이지요” 김씨는 그야말로 손님들에겐 ‘맞춤형’ 이발사인데요, 손님들이 머리를 자른 후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맘에 든다고 할 때 기분이 좋다는 그는 천상 동네의 베테랑 이발사입니다.
이발소의 주요 서비스는 이발이외에 면도 등의 제모라고 하는데요, 탑동이발소에서 이발과 염색을 하고 면도를 서비스 받아 ‘새 인물’이 되어 말쑥해진 손님들은 한바탕 요란스레 이별사를 늘어놓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자잘한 여자들의 수다보다는 걸쭉한 농이 오가는 남자들의 전유물 이발소. 작은 시골 동네의 케케묵은 이발소는 그래서 더욱 정겹고 소중합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