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은 2000년 이후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과 뉴타운 사업 추진을 위해 외국의 도시재생 사례를 소개하면서 도입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법상 도시재생은 그동안 시행되어 온 수많은 도시재생과 관련된 법과 제도들의 주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면 재개발’에서 ‘유지·관리 위주’로의 전환, 그리고 공공과 주민의 갈등을 최소화해 도시를 활성화하고자 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또한 도시재생을 논하는데 있어 문화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인데 문화주도 도시재생 정책은 1970년대 북미대륙에서 시작된 문화·예술을 활용한 새로운 의미의 도시정책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198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전략에서 문화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의 문화적 재생에 대해서는 문화를 통한 도시의 재생과 도시의 문화를 재생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전자는 도시의 재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자 방법으로서 문화예술을 활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도시 재생의 목표이자 결과로서 도시의 문화를 되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도시의 재생에 있어서 문화는 수단이자 방법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결과가 되고 추구해야 할 목적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몇 달 전 이 칼럼난에서 “성과 위주의 도시 재생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스마트 쇠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야할 때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경주는 수많은 문화유산과 발전의 여지가 있어 달리 보아야한다는 의견을 가진 분들도 있었고, 필자 또한 큰 틀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도시 재생이 여전히 이윤 창출과 자산 가치 상승에 목적을 둔 산업화의 틀 안에서 추진되다 보니 재건축, 재개발에 방점을 두게 되어 쇠퇴-재생-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을 낳게 된 것이다.
흔히 도시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많이 언급되는 전주 한옥마을의 예에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관광객은 2006년 100만명에서 2016년 1000만명으로 급증했는데 이는 도시 재생사업의 일종인 전주 전통문화도시 사업의 본격적인 추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영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에 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이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방문 체험기의 단어 분석에서 빈도가 급증한 단어는 만두, 줄, 아이스크림, 먹거리, 맛집 순이었고 문화, 예술, 학인당, 사업 등 문화도시에 걸 맞는 단어들은 급감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한옥마을은 임대료의 급상승, 전통가게 퇴출, 생활 불편으로 인한 거주 주민의 감소 등의 문제가 나타난 관광객들만의 마을이 된 것이다. 이는 도시 재생의 취지와 목적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라는 입장에서도 한 번 더 고려되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요즘 경주에서 관광 성공사례로 일컬어지는 소위 황리단길의 경우도 전주한옥마을과 같은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물론 그 시작이 관주도가 아니라 자연 발생적인 측면이 있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예산 낭비는 없겠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주차장 문제, 차와 관광객이 한데 엉겨 위험해 보이는 보행자의 안전 문제 등 방치해두면 안될 문제들이 속속 등장해 이의 해결이 시급한 실정이다.
황리단길이 핫플레이스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도 진지하게 검토하고,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비좁고 다니기 힘들지만 걷기중심의 짧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어서 사람이나 기념품 가게, 주변의 풍광 등 이벤트 요소가 많아 걸어 다니며 관광하기에 좋다는 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주차장의 확보 등 예산이 필요한 일보다는 관광객이 집중되는 시간대의 차량통행 제한 등의 방법을 고려해 보면 어떨까?
도시는 박물관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다. 경주 또한 그러하다. 따라서 도시는 변화해 갈 수 밖에 없고, 개발과 역사보존을 연속된 관점으로 본다면, 개발 중심의 시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를 희망하는 것이고, 역사 환경 보존을 강조한다면 좀 느린 속도로 변화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복원 또한 비슷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복원에 치우친 나머지 보존 가치가 있는 가까운 과거를 몽땅 허물고 그 터에 생경한 복원물들이 등장한다면, 몇 십 년 후에 우리 손으로 허문 그 과거를 위해 또 다른 복원을 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역사 환경을 보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영국의 역사보존계획 전문가 마이클 로스가 『계획과 역사유산』(Planning and the Heritage)에서 제시한 역사적·고고학적 이유, 심미적 이유, 사회적 이유의 세 가지 이유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와 둘째 이유는 어떤 장소나 건조물이 역사적 또는 건축·도시 계획적으로 중요하다든가, 매우 아름다운 전통적 조형미를 보여준다든가 하는 차원으로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할 만한 것들이다. 세 번째인 사회적 이유는 사람들이 최근 도시환경 변화의 속도와 형태에 불만을 가지며, 자신에게 익숙한 기존 환경에 애착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회적 이유’가 주목하는 것은 좀 더 일상적인 것들로, 오늘을 사는 일반인의 삶과 관련되는 건물과 시설, 장소 등으로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역사적 문화재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의 시작은 우리 주변의 건축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지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살기 좋은 곳이 가장 관광하기 좋은 곳’이라는 관광으로 유명한 어느 일본 마을의 모토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