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정공이 문하되 군사신하고 신사군을 여지하니이까? 공자대왈 군사신이례하며 신사군 이충이니이다<주석>定公 :노나라 군주. 명은 宋, 定은 그 시호이다. 哀公의 아버지이다.<번역>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부리고 신하는 임금을 충으로써 섬기면 됩니다.<묵상>
나는 정공을 보노라면 자신을 보는 듯하여 낯이 뜨거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정공처럼 연약하기 때문이다. 정공은 공자를 무척 존경하였다. 그리하여 공자를 대사구의 자리에까지 앉히고 정치를 맡겼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간계에 말려들어 다시 공자를 멀리하였다. 이리하여 공자는 유랑의 길로 들어섰다. 공자를 존경은 하되 그의 철학을 시행할 의지는 약하였다. 또한 여색을 단호히 끊을 결단력도 모자랐다. 결국 공자를 놓치고 그도 그 나라도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의지의 빈약. 곧 나의 단점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하여 재미있는 다른 해석이 있다. 곧 임금이 신하를 예로써 부리면 신하는 충으로써 섬긴다는 것이다. 앞의 절을 조건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인 게 아니고 모든 책임이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해석도 상당한 논리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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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는·낙이불음하고 애이불상이니라.<주석>關雎 :시경 국풍 주남편의 첫 편이다. 淫 :즐거움이 지나쳐 그 바름을 잃음이다. 傷 : 슬픔이 지나쳐 和에 해로움이다.<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저의 시는 표현이 비록 쾌락하나 지나침에 이르지 않고 비록 슬프나 정을 상함에는 이르지 않는다.<묵상>
관저는 시경에서 제일 처음 나오는 노래이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처음에 나오는 건 더 중요한 게 사실이다. 이 노래를 평하여 “樂而不淫, 哀而不傷”이라고 하셨다. 이는 공자의 詩觀이요, 평가 기준이다. 아울러 음악의 기준이기도 한다. 그럼 관저의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 당시 불리던 민요이다. 민요이므로 특정한 작자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너무 존숭하고 미화하여 문왕이 그의 비 태사가 처녀로 있을 때 부른 노래라고 억지 해석을 하였다. 지금도 시경의 주에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억지요 왜곡이다. 그저 순수한 민요 가운데 하나의 연애시일 뿐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연애시를 공자가 찬미한 것은 그 순박하고 순수한 감정을 높이 산 것이다. 진실한 연애시는 순진무구한 것으로 인간 감정의 고결한 것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후대의 유학자들이 지탄하듯 그런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순수한 감정의 발로인 것이다. 이제 그 시를 한 번 직접 감상하여 보자.關關雎鳩 까악 까악 물수리 새 在河之洲 황하의 모래톱에서窈窕淑女 날씬한 저 아가씨君子好逑 군자의 좋은 배필이로다.參差荇菜 들쑥날쑥 물마름左右流之 이리 저리 흐르고窈窕淑女 날씬힌 저 아가씨를寤寐求之 자나 깨나 구하네.求之不得 구하여도 얻지 못하니寤寐思服 자나 깨나 그리도다.悠哉悠哉 기나긴 긴 이 밤이여輾轉反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參差荇菜 들쑥날쑥 물마름左右采之 이리저리 캐고요窈窕淑女 날씬한 저 아가씨琴瑟友之 금슬같이 벗하고자.參差荇菜 들쑥날쑥 물마름左右芼之 이리저리 삶고요窈窕淑女 날씬힌 저 아가씨鐘鼓樂之 종과 북으로 즐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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