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김종삼 1947년 봄심야(深夜)황해도 해주(海州)의 바다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境界線) 용당포(浦)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유월에 읽는 한 편 시의 알 수 없는 ‘수심’(水深) 한 편의 짧은 시를 읽는다. 무심하리만치 담담한 어조의 시가 거느린 슬픔의 내밀함은 얼마나 절절하고 지속적인가?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겪던 전쟁 발발 몇 년 전, 심야에 배를 탄 한 무리의 민간인들이 있었다. 군(軍) 순시선의 감시망을 피해 칠흑의 밤을 이용하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38선의 경계를 막 넘으려는 순간, 젖먹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부모는 재빨리 아이의 머리를 물속에 밀어 넣는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젖먹이를 산 채로 바다에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숨죽인 비정과 해일 같은 통곡을 무엇으로 잴 수 있으랴? 한 배를 탔던 사람들이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할 깊은 슬픔은 또 어떻고? 그들뿐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거나 읽는 독자들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여기서 수심은 문자 그대로 물의 깊이면서, 수장시킨 영아에 대한 슬픔의 깊이고, 이데올로기가 야기한 비극의 깊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2행 2행의 ‘삼킨’의 주체는 바다일 수도, 부모일 수도, 분단 현실일 수도 있겠다. 시인도 그렇게 월남한 사람 중의 하나다. 시인은 직접 경험했거나 타인의 말을 통해 그 사건을 들었을 것이다.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라는 구절은 이 시가 발표된 1971년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인데, 그 사건이 여전히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심하게 6월 25일을 보내고 읽은 일곱 줄짜리 시 한 편! 길이가 짧기에 역으로 슬픔의 파문은 더 깊고 오래 남는다. ------------------------------------------------------------------------------------------------------------ 손진은 시인 약력경북 안강 출생. 1987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95 매일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 『고요 이야기』, 저서 『서정주 시의 시간과 미학』외 7권, 1996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경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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