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면 부지1리 정미소에는 느린 속도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래된 관성처럼 충일한 행복을 찧고 풍족함을 나누던, 해묵은 동네 방앗간은 44년째 민낯 그대로입니다. 아무 치장도 하지 않은 이 동네 아낙네와 같다고 할까요? 정미소 일의 특성상 천정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건물의 작은 틈새 햇살사이로 깔끄러운 먼지가 날렸던 기억, 따끈한 온기가 남아있는 바로 찧은 쌀에서 나던 구수한 냄새, 거대한 벨트가 요란한 굉음을 내는 도정기계들과 돌아가던, 일반 가옥과는 그 모양새 부터가 달랐던 기억속 정미소는 참 넓었습니다. 부지1리 정미소는 1974년, 당시 부지1리의 필요에 의해 동네 공동자금으로 이 동네 새마을회관에서 지었다고 합니다. 이 정미소에도 우리가 가끔씩 떠올려 회상하는 어제가 그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방앗간’, ‘도정공장’, ‘정미소’라 불리며 작은 마을 곳곳에 남아 있던 정미소는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벼 수매를 해서 건조, 저장에서부터 포장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동화 현대화한 시설인 미곡종합처리장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시절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던 정미소는 시골마을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계화’된 공간이었습니다. 부지1리 정미소는 유년시절 기억의 정미소 그대로였습니다.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슬레이트 지붕에, 녹이 슬어 시간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함석판으로 시멘트 벽위의 외장을 덧대고 있었습니다. 정미소 안의 벽면과 정미 기계들에는 뻑뻑하고 눅진한 먼지들이 거미줄과 함께 뒤엉켜 있었습니다. 바람에 날린 쌀겨를 왼종일 뒤집어 쓰며 이 정미소를 운영하는 최문환(69)씨의 옷에도 누렇고 찐득한 먼지가 어깨에 내려 있습니다. 부지1리 마을주민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최씨가 여전히 이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월 두 번 격주로 토요일에 운영해 마을 주민의 편리를 봐주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수요는 줄었어도 주민들 양식거리 정도만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뽀오얀 분이 깔려 있는 정미소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최씨는 말합니다. 예전에는 밤낮 주야로 찧어냈지만 지금은 논농사를 많이 짓지 않기 때문에 많이 찧지 않고 부지리 주민들의 식량 정도만 찧는다고요. 그리고 주말엔 대처있는 자식들이 고향에 와서 쌀을 찧어가고 있다고도 합니다. 정미소의 특이한 정서와 장소성은 오늘날 ‘레트로(Retro)’열풍을 타고 활발하게 재활용되고 있는 예가 많습니다. 정미소의 트렌디한 변신이 펼쳐지는 것인데요, 옛 건물의 흔적을 최대한 살린 채 감각적인 요소를 더해 예술 공간 등으로 탄생하는 것이죠. 앞으로 이곳 부지리 정미소의 운명도 알 수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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