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재미있는 영상 하나가 있어 소개한다. ‘플루트 연주자가 대금을 불 수 있을까?’ 하는 제목의 유투브 영상이다. 조회 건수가 8만이 넘은 걸 보니 온라인 상에서도 이슈가 되었던 모양이다. 플루트는 잘 아시다시피 가로로 연주하는 서양의 목관악기 중 하나다. 음색이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오케스트라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선율(旋律)악기다.
한편 순우리말로 젓대라고도 하는 대금(大笒)은 갈대 속청(막)의 진동으로 특유의 소리를 내는 전통 악기다. 국악연주의 중심을 잡아주는 대금은 정악과 산조(시나위젓대)로 구분된다. 다시 말해 아정(雅正)하고 어려운 궁중 음악용과 〈전설의 고향〉 스타일의 민중 음악용으로 나뉜다.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라니 하는 말인데, 필자는 어린 마음에 대금이나 퉁소 소리가 무척 좋았다. 신문에 난 광고를 조심스레 오려들고는 어머니를 졸라 무작정 대금 학원을 찾아갔다. 대학에서 전공자를 지도하며 동시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학원도 운영하던 교수님이 조심스레 입을 뗀다. “대금이란 게 참 어려워요, 소리를 제대로 내는 데에 일 년은 족히 걸려요. 이 정도 하는 것만도 대단해요” 십 분이 지났는데도 옥수수 쥐듯 잡은 대금에서 바람 새는 소리만 나니까 좀 더 커서 오라는 의미였다.
자존심(?)이 상한 국민학생(초등학생)은 “그럼 저건 뭐에요?”하고 손가락으로 피브이시(PVC) 플라스틱 대금을 가리켰다. “아, 그럼 저거라도 불러 볼래?” 그렇게 대금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며칠이 안 지나서였다. 정말이지 내가 이걸 왜 배운다고 했나 싶었다. 대금은 이를테면 학(鶴)의 몸통이란다. 그러니 악기를 든 양팔은 학의 고고한 날개다. 대금이 무겁다고 한쪽 팔이 떨어지면 꾸중을 들었다. 두 팔 모두 내려가도 그랬다. 고고한 학이니까 두 팔은 당연히 활짝 펴야 한단다. 손가락으로 막고 눌러야 할 구멍과 구멍 사이도 왜 그리 먼지, 조막손으로 운지(運指)하기가 쉽지 않았다. 목도 왼 어깨에 붙이듯 완전히 꺾어야 했다.
더 난코스는 소리 내는 작업이다. 입술을 최대한 옆으로 편 상태에서 휘파람 불듯 작은 구멍을 동그랗게 만든 다음 2센티미터 정도 너비의 취구(吹口)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입술 밑 부분으로 구멍의 절반 정도를 막은 상태에서, 바람의 반은 구멍 안으로 나머지 반은 밖으로 빼내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너무 세게 불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약하게 해서도 소리가 안 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고 한다.
다루기 힘든 대금과의 싸움이지만 가끔은 재미난 사실도 알게 된다. 바로 대금이 똥(!)을 싼다는 사실이 그렇다. 아무리 고고(孤高)한 학이라도 변을 보는 건 어쩌면 자연의 섭리다. 한 번씩 전공자 형들이 교수님 앞에서 연주하는 걸 보곤 했다. 평가를 받는 본인들이야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지만 우리같이 비전공자들은 연주곡보다는 대금 나무 끝에서 침이 언제 떨어지나 그거만 집중한다. 취구를 통해 대금 내부를 돌고 돌아 나온 숨은 결국 침이 되어 떨어지게 된다. TV에서 본 적들이 있으리라. 빨간 한복의 연주복을 우아하게 입은 대금 주자들이 아정한 모습으로 연주하는 모습 말이다. 카메라가 대금이나 연주자의 상체만 비추어서 그렇지 바닥은 여기저기 침으로 흥건하다. 우아한 백조와 물 밑으로 발발거리는 물갈퀴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거다.
대금이 이처럼 아정한 콘셉트를 고수한다면 주책없이 떨어지는 침은 모양새가 좀 그렇다. 더군다나 이런 침이 대금 내부를 태우고 또 녹인다고 한다. 침은 약한 산성(약 6.0pH)인 까닭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산(酸)으로 썩을 대로 썩은 대나무에서 드디어 옥소리가 나게 되는 거다. 이 얼마나 철학적인 환골탈태인가….
주지하다시피 서양 악기에 침은 치명적이다. 금관이든 목관 악기든 상관없이 그렇다. 반면에 동양 악기에 침이라는 부산물은 오히려 신(神)의 한 수라서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양악기는 명가(名家)에서 만든 제품만 명기(名器)가 되지만, 동양 악기는 길거리에 흔한 나무작대기라도 침 세례(!)를 퍼붓고 사랑을 주다 보면 어느새 명기가 된다는 말이다. 물론 과장이지만 그렇게 틀린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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