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산 마애불로 더 유명한 ‘경주서악동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제62호)’옆 사당 뒤편 바위에서 불상 조성과정을 담은 명문이 발견됐다. 이 명문은 불교고고학을 연구한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에 의해 발견됐으며 다른 학자들과 명문을 연구 조사한 결과 가로 5행, 세로 5열 중 8자를 판독했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1∼5열로 번호를 붙이면, 1열 1행에 云(운)으로 보이는 글자가 있다. 2열 1행은 居(거), 5행은 弥(미)를 새겼고, 3열과 4열 5행에 각각 聞(문)과 思(사)가 있다. 가장 글자가 많이 남은 열은 5열이다. 5열 3∼5행에는 차례로 阿(아), 尼에서 匕대신工(니), 信(신)이 보인다. 글자의 크기는 세로 3.5~4.5㎝이고, 글자 사이의 간격은 2~3㎝, 옆 글자와의 간격은 약 4㎝이다. 명문은 능숙한 솜씨로 새긴 해서체로 가로 3m, 세로 2.8m, 높이 2.5m의 바위 동쪽 면에 표면 박락과 파손이 심한 상태로 남아있다. 더구나 후대에 빗물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길이 110㎝, 너비 6㎝, 깊이 3㎝의 홈을 파내면서 많은 글자가 없어졌다. 남은 부분이 전체 명문의 중간 부분으로 짐작되며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연호나 간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판독된 명문 중에서 ‘弥(미)’는 선도산 마애불의 본존이 아미타여래상인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이며, ‘阿尼에서 匕대신工(아니)’는 ‘阿尼(아니)’와 한자모양은 다르지만 음과 뜻이 같은 이체자로 학계에서는 여성 승려를 뜻하는 비구니(比丘尼)와 같은 의미로 보고 있다. 박 관장은 “명문의 위치로 보아 마애불의 조상명문으로 보인다”며 단석산 신선사 조상명문과 더불어 우리나라 석불 명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이 정도로 잘 새긴 명문이 있다는 것은 당시 선도산 마애불 조성에 대단한 공력이 투입됐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다”라고 말했다. 신라사를 연구한 경북대 이영호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명문은 비록 일부 글자만 판독된 상태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진평왕대(597~632년) 선도성모 불사 관련 역사에 실제 있었던 사실이거나 700년 전후에 조성된 마애삼존불의 조상명문(造像銘文)일 가능성이 높은 중요한 금석문이다”고 말했다. 고대사를 연구한 연세대 하일식 교수는 “선도산 명문 중 ‘아니(阿尼)’는 신라의 불교 공인 직후부터 비구니의 출가가 이루어졌고, 그들이 여러 불사를 주도하거나 관여하는 등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한편 서예사를 연구하는 정현숙 박사는 “명문의 글씨는 힘차면서 품격 있는 북위풍 해서로, 경주 남산신성비 제10비(591년, 신라 진평왕 13년), 함안 성산산성 출토 ‘임자년’ 목간(592년), 하남 이성산성 출토 ‘무진년’ 목간(608년)의 서풍과 흡사해 진평왕대인 6세기 말 7세기 초반 신라의 북위 서풍 수용을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서예사적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한편, 선도산 마애불은 신라 개국 이전부터 선도성모가 머물며 신라를 지켰다는 전설이 있는 선도산 정상에 높이 6.85m인 본존 아미타여래입상과 좌우에 협시보살인 높이 4.55m인 정병을 들고 있는 관세음보살과 높이 4.62m인 대세지보살이 배치된 7세기 중엽의 삼존불상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