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동 불국공설시장 장터 한 켠에는 만물상 같은 가게 하나가 있습니다. 오랜 풍상을 겪은 듯한 이 가게 이름은 ‘시장종합잡화’입니다. 얼핏 보면 개성이 없는 듯한 이름이지만 정성들인 손글씨 간판에서 느껴지는 내공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이 가게 앞 작은 공간에는 음나무 한 그루가 제법 실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연한 순은 쌈거리로 봄 한 철 입맛을 돋우웠을 터이지만 지금은 초록이 짙어 무성합니다. 빠알간 장미와 바로 옆, 꽃집에서 사온 듯한 작은 화분 몇 개도 이 오래된 가게를 수줍은 듯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재활용 해온 듯한 낡은 소파식 의자 몇 개는 할머니들의 수다에는 더없이 소중한 도구일테죠? 작은 평상에도 많은 이들이 쉬어갔을테구요. 일자형의 작고 낮은 한옥 한 채에 간이 공간을 덧달아 낸 이 잡화점은 제법 호시절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잡화들이 아직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랬습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을 파는 집’ 이라고나 할까요? 일상에서 필요한 자잘한 잡화서부터 주로 부인네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일체, ‘몸뻬’, 차양용 모자, 잠옷, 심지어 모피옷 몇 벌도 걸려 있었으니까요. 요즘은 아무래도 농사일이 바빠진 탓인지 양산이나 차양용 모자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여든을 넘긴 세월동안 50여 년 넘게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는 주인 할머니는 손님이 들어가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시니 그저 방 안에 앉아서 손님이 찾는 물건을 알려주십니다. 눈짓으로, 혹은 고개를 돌려 물건이 있는 곳을 적당하게 가르킨답니다. 이 주인 할머니는 시집 오자마자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청춘을 바쳐 우직하게 일해 오신 거죠. 그 사연이 궁금해졌지만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신산한 삶의 이야기보따리를 굳이 헐기는 싫었으니까요. 오래된 진열대지만 오밀조밀 신구(新舊)의 생필품들이 가지런하게 공존하며 진열돼 있어 정겹기까지 하더군요. 도대체 팔리기나 할까싶은 물건들도 더러 눈에 띄었는데요, 그 팔리지 않은 물건들이 주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유행과는 상관없는 ‘정체(停滯)’는 그 자체로 골동품이었습니다. 잠시 그곳에서 주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이곳의 문이 수시로 열렸다 닫히곤 했습니다. 손님들이 아직도 심심찮게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죠. ‘오래’는 낡은 것이기도 하지만 시간속에서 사람과 함께 해 온 켜켜이 묵은 감동이 서린 곳입니다. 낡은 가게들이 사라지는 것은 장소와 업종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일하던 사람이 사라지고 우리들 추억과 기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곳 역시 일대 서민들과 세월을 함께해 온 정겨운 ‘잡화점’입니다. 이 볼품없는 공간에도 매일 저녁은 오고 불이 켜집니다. 후줄근했던 이 가게 안 잡화들도 마법처럼 환하게 빛을 발하는 시간이지요. 시골 시장 한 켠에서 그들 속살을 내비추는 시간...,우리가 저 공간을 기억하며 ‘드르륵’ 문을 열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오랫동안 우리들의 이야기와 사연이 담겼던 그곳이 부디 장수해 주기를 기원합니다. 그림=김호연 화백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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